수년 전 범어사 덕상 스님은 세수 80이 되었을 때 자신이 없어지면 찾지 말라고 했다. 곧 노스님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중스님들은 3개월이나 그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얼마 뒤 금정산 미륵암 바위 위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 중국의 승찬선사는 홀연 수행하던 방문을 열고 나와 뜰의 나뭇가지를 붙잡고 선 자세로 열반했고, 청활 스님은 “내가 입적하거든 시신을 벌레들에게 나누어주라”며 앉은 채로 열반했다. 조선 고한희언 선사는 “자신의 살과 뼈를 산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불교는 죽음을 육체의 소멸이라 생각하지 않고 법신(法身)의 회귀라 믿는다. 그래서 죽음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의 탄생이요, 적멸(寂滅)이다.” 시인 정휴(正休·56·사진) 스님이 이렇게 육신의 죽음을 초월한 선사들의 입적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들의 임종게를 모은 책 ‘적멸의 즐거움’(우리출판사 발행)을 냈다. 고금의 선사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자세로 맞았는가 하는 일화들을 마치 소설을 읽듯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의 현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들에게 적멸은 곧 자유를 찾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즐거움이 된다.
60년 장좌불와(長坐不臥) 끝에 앉은 채로 눈을 감은 도신, 앉거나 서서 돌아가신 스님들이 누구냐고 물은 뒤 물구나무를 서서 입적한 등은봉, 관을 선물받고는 덩싱덩실 추었다는 보화, 스스로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소신공양(燒身供養)한 경통 스님 등의 이야기가 지은이의 드라마틱한 필치로 소개됐다.
선시(禪詩)는 이러한 선사들의 깨달음인 견성(見性)과 오도(悟道)의 세계를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하나의 문학적 장르가 됐다. 특히 그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의식과 정신을 표출한 시를 오도송(悟道頌) 또는 임종게(臨終偈)라 한다. 조선시대 부휴 선사의 임종게를 보면 선객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칠십 년 꿈과 같은 바다에 놀다가(七十餘年遊幻海)/ 오늘 이 몸 벗고 근원으로돌아가네(今朝脫却返初源)/ 원래 본성에 걸림이 없으니(廓然空寂本無物)/ 어찌 깨달음과 나고 죽음이 따로 있겠는가(何有菩提生死根)’
사명대사는 ‘어찌하여 수고롭게 오가며 허깨비 몸을 괴롭히리오(何用屑屑往來 勞此幻軀)’라며 입멸했고, 월산 스님은 ‘한평생 돌고 돌아 한 발짝도 옮기지 않았네(廻廻日生 未移一步)’라고 크게 외치고 떠났다.
책에는 이외에도 ‘전등록(傳燈錄)’이 전하는 중국의 역대 고승들과 경허(鏡虛) 만공(滿空) 효봉(曉峰) 경봉(鏡峰) 성철(性徹) 일타(日陀) 스님 등 우리 근현대 선승들의 입적 일화와 임종게가 소개됐다. 정휴 스님은 특히 “불교의 개혁 목적은 단순히 제도를 몇가지 뜯어고치는 데 있지 않고 혁범성성(革凡成聖), 즉 범부를 고쳐 성인을 이루는 데 있다”며 최근 불교계에서 개혁 논리가 앞세워져 승단이 세속화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휴 스님은 60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한 뒤 청암사ㆍ구룡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신문’주필 및 사장 등을 역임했다.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등 많은 책을 낸 문인이자 불교계의 제갈량으로도 불리는 인물. 그는 “나 자신 이 글을 쓰면서 죽음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동했다”면서 “선사들의 열반과정은 곧 생의 허망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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