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산부인과 메인작가 전현진씨연기자들이 40여개의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500회(8일 방송)를 넘기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을 도입해 웃음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PC통신에선 등장인물의 패러디가 대유행이다. 성공적인 한국형 시트콤(Situation Comedy)으로 평가받는 SBS ‘순풍 산부인과’. 이 시트콤의 산파 역을 하고 있는 메인 작가 전현진(30).
시트콤은 젊은 작가들의 ‘사각의 링’이다. 100여명의 작가들이 MBC ‘세친구’, KBS ‘반쪽이네 일기’, SBS ‘순풍 산부인과’ 등 6개 시트콤에서 전쟁을 벌인다. 시트콤 작가 중에서 30대는 노인 취급을 받는다. 20대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포맷과 대사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상황에서 ‘순풍산부인과’의 전현진은 독보적이다.
그녀가 2주 전 쓰러졌다. 일주일에 5-6일은 종일 작업에 몰두한다. 지난 2년 동안 30시간 이상을 눈을 떠 있어야 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과로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퇴원한 지 이틀 만에 창백한 얼굴로 나타난 전현진은 “시트콤 작가는 전형적인 3D(Dangerous, Dirty, Difficult) 직종이지요.” 그런데 왜 시트콤 작가를 하는가? “제가 쓴 대본이 시청자 웃음으로 순간 승부가 나는 것이 스릴이 있어서요.” 반복과 진부를 불허하는 시트콤 작가는 ‘50분짜리 인생’이라고 덧붙인다.
전현진은 한국 시트콤 역사와 함께해 왔다. 그녀의 이름은 잘 몰라도 ‘LA 아리랑’ ‘아빠는 시장님’ ‘OK 목장’은 대부분의 시청자가 안다. 그녀가 집필했던 시트콤들이다.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취업을 고민하다 우연히 SBS 작가 1기 공모광고를 봤다. SBS 편성부 PD인 언니가 작가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녀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 입사 당시 시트콤은 없었다. 그녀가 시작한 프로그램은 오락. 3개월에 40만원 받는 밑바닥 작가 생활부터 시작해 ‘우리들 세상’ ‘주병진 쇼’ ‘깜짝 비디오쇼’ 등 SBS 오락 프로그램의 대본을 썼다.
“오락 프로그램을 하면서 30초에 웃음이 터지지 않으면 시청자의 리모콘이 돌아간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글쓰는 것을 한번도 배우지 못한 채 맨 땅에 헤딩하며 작가일을 배웠어요. 1년 동안은 집에도 못들어가고 방송사에서 먹고 살았었요. 이때 순발력이 많이 는 것 같아요.”
오락 프로그램은 신세대와 함께 간다. 그래서 그녀는 오락 프로그램 작가를 3년쯤하고 고민에 빠졌다.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해 오락과 드라마의 중간인 시트콤을 선택했다. ‘LA 아리랑’에서 시트콤의 필수 요소인 의외성과 순발력을 대본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시트콤의 성공의 열쇠는 캐릭터의 정형화를 얼마나 잘 하느냐와 늘 신선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녀는 관찰력에 관한 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오지명씨는 긴 신중한 대사는 못해요. 박영규씨는 워낙 오버하는 연기를 잘 하고요. 허영란씨는 말투는 느리지만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지요.” 전현진은 연기자의 일상에서부터 연기 패턴까지 완벽하게 파악한 뒤 캐릭터의 성격을 정해 대사를 써 나간다. ‘순풍 산부인과’가 최고의 인기 시트콤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의 성공적인 소화였다.
그녀는 두 살 연하의 남편을 PC통신을 하면서 만났을 정도로 무늬만 30대이고 실제 20대 초반의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시트콤 대본을 쓰기 위해 인터넷, 신세대 잡지, PC통신, 신문 등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매체를 다 봅니다.”
스트레스도 PC통신으로 푼다는 그녀는 새롭다면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는 스타일이다.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잖아요.” ‘순풍 산부인과’에서 시도한 정치 패러디, 과거로 돌아가기 등 시트콤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방식들이 전현진을 비롯한 작가들의 아이디어였다.
시트콤 작가로서 가장 괴로운 일은 단독 작업을 못한다는 것이다. 대본을 쓴 뒤 6명의 작가와 토론하고 마지막 대본을 쓴다. “‘순풍 산부인과’ 인기는 연출자 연기자 그리고 동료 작가들의 합작품입니다. 저 혼자 노력해서는 안돼요.”
“착한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심리적인 묘사만으로 웃음을 주는 시트콤을 쓰고 싶어요”라는 말로 인터뷰가 끝났다. 신문사를 나서며 한마디 덧붙였다. “미국의 대표적 시트콤인 ‘캐롤라인’을 보러 가요. 시트콤은 미국이 원조지만 한국형 시트콤을 만드는 것은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약력
1970년 서울 출생
1992년 서강대 화학과 졸업
1992년 SBS공채 작가 1기
1992년 ‘우리들 세상’(SBS)
1992년 ‘주병진 쇼’(SBS)
1994년 ‘새내기 출동’(SBS)
1995년 ‘LA아리랑’(SBS)
1996년 ‘아빠는 시장님’(SBS)
1997년 ‘OK목장’ ‘미스 앤 미스터’(SBS)
1998년 ‘순풍 산부인과’(SBS·집필중)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입력시간 2000/03/1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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