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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라고스 '피노체트' 해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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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라고스 '피노체트' 해결할까

입력
2000.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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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리카르도 라고스(61) 칠레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의 국회의사당. 재닛 리노 미 법무장관 등 내빈들은 물론이고 칠레 정부 관계자들은 행사장에서 전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가 ‘종신상원’ 자격으로 식장에 나타날까 마음 조려야 했다.이곳에서 불과 80㎞떨어진 부살레무의 요양소에 머물고 있던 피노체트는 라고스가 도착하기 직전에 안드레스 잘디바르 국회의장에게 참가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외신들은 만약 피노체트가 참석했더라면 행사 주인공이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해프닝은 칠레 정부가 피노체트 처리 문제를 놓고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라고스는 일관되게 “법원의 결정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우익세력은 피노체트가 재판정에 설 경우 체제전복도 불사할 태세다. 특히 칠레 군부는 라고스 취임식 하루전인 10일 “피노체트 장군에 대한 지지는 변함없다”는 성명을 발표,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라고스는 취임연설에서 “국민들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칠레 정부가 민주국가임을 전 세계에 입증하겠다“고 밝혀 피노체트를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간접 피력했다.

칠레 사법부는 이미 사법권 독립을 철저히 보장하겠다는 라고스의 약속에 힘입어 각종 인권 유린행위로 72건의 소송이 제기된 피노체트에 대한 형사소추를 진행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라고스 정권이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파급되기 전에 피노체트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속히 경제회복, 빈부격차해소, 범죄퇴치 등 당면과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우익연합 후보에 불과 2.6% 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던 라고스가 ‘민주화와 인권,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해야 비로소 ‘피노체트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스는 이날 자유경제 정책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한편 실업보험 등을 통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이른바 ‘공평한 경제’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방이 우려했던 사회주의가 아니라 ‘중도 또는 온건 좌파’노선을 표방한 것이다. 하지만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군부와 군정시절의 경제호황에 향수를 느끼는 기득권층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게 뻔하다.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로 붕괴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이후 27년만에 등장한 칠레의 ‘사회주의 실험’이 경제난 극복과 피노체트 사법처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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