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모(36)씨는 낮이면 조느라 정신이 없다. 사무실에 앉아 일만 시작하면 졸음이 절로 쏟아진다. ‘잠을 주체하기 힘들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단순히 나른한 게 아니라 마치 전깃불을 끄는 것처럼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한 결과 ‘기면병(嗜眠病)’일 가능성이 크니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보라는 답변이었다.따사로운 햇살이 봄 기운을 느끼게 하면서 사무실마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찾아드는 졸음은 신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인 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수면장애 여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적정 수면시간
단순히 생각하면 낮에 졸리는 것은 밤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 적당한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학계에선 평균 8시간 정도로 보고 있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5-6시간만 자도 낮에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그 시간이 적정 수면량이다. 문제는 수면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아무리 오래 잤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낮에 졸리기 마련이다.
수면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잠든지 30분 정도 지나 나타나는 델타수면. 이 때 우리 몸은 낮동안에 쌓인 피로를 풀고 단백질 합성 등을 통해 다음 날 활동에 대비한다. 대뇌 속 시상하부에 있는 생물시계는 새벽보다 한밤 중에 델타수면에 익숙하도록 맞춰져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졸음에 빠지는 병
대표적인 게 자는 도중 일시적으로 숨을 멈추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보통 숨을 10초 이상 멈추었다가 다시 내뱉는 행동을 하루 30회 이상 반복하는 경우를 말한다. 심한 경우 하룻밤에 800회 이상 반복하기도 한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에게 주로 나타나며 깊은 잠을 방해해 낮졸림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서울대병원 수면클리닉 정도언교수는 “그대로 방치하면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합병증이 오며, 기억력·성기능장애도 나타난다”고 경고했다.
자는 동안에 갑자기 팔다리를 움직이는 행동이 반복되는 ‘주기성 사지운동증’도 깊은 잠을 방해해 낮에 피곤하고 졸린 증상을 일으킨다. 잠이 아직 들지 않았는데 종아리 안쪽의 근육에서 묘한 느낌이 생겨 잠을 이루기 힘든 ‘쉬지 않는 다리 증후군’이라는 병도 있다. 이상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일어나서 다리를 자주 움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면병은 잠을 조절하는 중추신경에 문제가 생겨 잠들 무렵 헛 것을 보거나 가위 눌리고, 낮에 졸음을 참지 못하는 질환. 미국영화 ‘아이다호’에서 요절 배우 리버 피닉스가 아무데서나 잠에 빠져드는 10대 기면병 환자로 나온다.
드물지만 밤에 충분히 잠을 잤어도 아침에 깨기가 힘들고 멍한 상태에서 계속 졸리는 ‘특발성 수면과다증’, 1년에 두세 번 1주일 이상 낮에 졸리는 ‘반복성 수면과다증’, 수시로 졸고 깨자마자 마구 먹으며 성에 탐닉하는 ‘클라인 레빈 증후군’도 있다. 고혈압, 간질환, 당뇨병이 있어도 낮에 졸립다.
■진단과 치료
낮에 심하게 졸리는 증상이 계속되면 수면장애클리닉이 있는 병원을 찾아 수면다원검사를 해봐야 한다. 수면을 취한 상태에서 뇌파, 안구운동, 혈압, 코골이, 호흡정도 등을 측정하고 사지의 움직임 등을 비디오로 촬영해 수면의 질과 장애원인을 분석하는 검사이다.
이를 통해 수면장애의 원인이 발견되면 수면환경 개선이나 약물요법, 광선치료 등을 통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대안산병원 수면장애클리닉 신 철교수는 “잠을 잘 자려면 침실의 소음도, 조명, 일정한 수면시간 등 수면 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가벼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영양섭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 숙면을 도와주는 9가지 원칙
1.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2. 침실에서는 잠자기와 성행위만 한다.
3. 자기 전에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간식을 먹거나 10분 정도 책을 읽는다.
4. 저녁에 운동을 한다.
5.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6. 잠자기 6시간 전에는 카페인이 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8. 낮잠은 규칙적으로 잔다. 하루 15~20분 정도의 낮잠을 자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진다.
9. 수면제는 3주 이상 먹지 말고 절대 술과 함께 복용하지 않는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입력시간 2000/03/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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