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의 외국어학교에서 2년 동안 스웨덴어를 가르치고 내가 서울에 온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서울에서 보낸 첫 달에 나를 만난 한국 사람들은 분명 나를 무례하고 교양없는 외국인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기실 나는 버스를 탈 때도 맨 마지막으로 타고, 지하철에선 나보다 서른살이나 어려보여도 여성에게 항상 자리를 양보하며, 학교에선 여학생들을 앞질러 문을 지나친 적도 없는‘예절 바른’사람인데 말이다. 그뿐인가. 물건을 건낼 땐 항상 두 손을 사용하며, 소주는 절대 자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잔이 비면 반드시 채워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한국식 습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이 내가 중국과 스웨덴에서의 가졌던 습관 때문에 몇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가령 베이징의 식당엔 재떨이를 갖춘 곳이 반도 안돼 담배는 항상 바닥에 버렸었다. 그 생각에 서울에 와서도 늘 담배를 발로 비벼껐는데, 어느날 수업에 들어가다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휙 집어던졌더니 함께 강의실에 들어가던 여학생이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담배를 필 땐 주위에 항상 재떨이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내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익숙한 스웨덴어와 낯선 한국어 사이의 호칭 차이다. 스웨덴에서 살 땐 평생토록 누구를 만나도 직함도 붙이지도 않고, 성(姓)도 빼고, 이름만 불렀었는데, 한국어로 제3자를 지칭할 때 꼭 “김교수님은…”하는 식으로 직함을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길거리에서 나를 보고 스웨덴어로 자연스럽게 “안녕, 스벤(hej, Sven)”하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나를 “스벤 교수님은…”라는 식으로 지칭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고, 그 혼란에 살짝 미소가 나오기도 한다. 외국어를 배우려면 그 정도 혼란 쯤은 감수해야겠지만.
사족으로 한국에서 느끼는 작은 불만(?)을 털어놓자면, 중국인 아내와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겪는 해프닝이다. 내가 “사과는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주인들은 항상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내가 한국사람이냐고 묻곤 한다. 나는 항상 “한국사람 아닙니다. 중국사람입니다”라고 설명하지만 노점상 주인들은 아내에게 한국말로 말걸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문동 사람들은 이젠 우리 부부의 정체를 알지만, 수백만이 사는 서울에서 나는 종종 아내 때문에 한국어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다.
/울로프 울손·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부교수·스웨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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