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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리뷰] 물질만능세태 회화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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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리뷰] 물질만능세태 회화적 비판

입력
2000.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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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서울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김준성은 작가로서는 몇 가지 특기사항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80대에 든 노작가로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 오늘의 세태를 향해 또 동시대인들을 겨냥해 비판과 풍자의 활시위를 당김으로써 현역작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결과를 맞기도 한다. 올곧게 살라는 따뜻한 충고로 이어지곤 하는 비판의지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김준성의 창작동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힘, 소유개념, 대중성 등에 적당히 길들여지면서 너나할 것 없이 속악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니만큼, 또 이런 현실에 점점 둔감해져 가고 있음을 느끼는 시점이니만큼 ‘돼지족발’(21세기문학 봄호)의 출현은 차라리 적시적인 데가 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는 아내의 은근한 강요 아래 한 택시운전기사가 자신의 발목을 자르기 위해 철로에 누워있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기사가 인근 마을사람들에게 구출된 후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끝나고 있는 ‘돼지족발’은 제목에서부터 인간희화(人間戱畵)와 세태풍자의 기운이 넘치고 있다. 억대의 보험금이 일시에 들어오는 환영에 젖으면서 아내는 남편의 발을 돼지족발 쯤으로 보아 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의 글쓰기 방법은 전통적인 데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 도덕적 상상력에다 작가로서의 동력을 두고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재미와 의미를 적절하면서도 투명하게 배합하고 있는 것도 전통적인 태도에 들어간다. 물론, 황금욕에 눈이 멀어 인성(人性)이 수성(獸性)으로 바뀌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진부한 소재마저도 새로운 담론에 실리면 새로운 소설로 비칠 수도 있다. 이 점을 모를 리 없지만 작가 김준성은 옛날부터 자신에게 익숙한 세태소설, 사건소설, 범죄소설, 악한소설 등을 겹겹이 펼쳐내는 방식을 취하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속악해지는 인간세계를 향해 정면공격을 시도했다. 작가는, 배금주의의 노예가 되어 거리낌없이 수성을 드러내는 존재를 문제삼은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인성 속에서 수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상을 절망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철로의 상징적 의미를 서두에 배치했다든가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끝까지 따라잡고 있다든가 주인공이 깨닫는 모티프를 수미쌍관 식으로 배치하였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노력은 이 소설을 단순한 세태소설이나 범죄소설에서 건져 올리는 힘을 발휘하게 한다. 이 소설의 끝장을 덮으면서 형이상학적 자질이 작중 사건을 좀 더 힘차게 견인했더라면, 또 철학적 인간탐구론과 사회학적 인간현상론이 보다 튼튼하게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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