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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갚자" 부도 옛사장을 직원으로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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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갚자" 부도 옛사장을 직원으로 채용

입력
2000.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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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엔지니어링 이동훈사장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알루미늄 타공(打空)업체 ㈜성실엔지니어링 이동훈(李東勳·49)사장은 이 회사 이영주(李英周·60)소장과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원래는 이소장이 사장이고 이사장은 부하직원이었는데 지금은 역할이 바뀌었다. 이소장은 회사가 부도가 나자 자식처럼 아끼던 이사장에게 회사를 물려줬고 이사장은 거듭되는 사업실패로 자살까지 기도한 이소장을 직원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소장님은 사장님으로 계실 때부터 일을 가르쳐 주고 저를 자식처럼 보살펴 주셨는데 이제는 다시 직원으로 저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사장은 어릴 때부터 회사의 일등공신이었는데 회사를 그만 둔 뒤 폐인이 되다시피 한 나를 다시 불러주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은인입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사장은 부모님을 모두 병으로 여읜 뒤 먹을 것이 없어 13세 어린 나이에 경북 청송군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왔다. 숙부의 소개로 동신공업사라는 철공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공장에서 먹고 자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사장이 바로 이소장이었다. 이소장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지도 못하고 일하면서도 기술을 배우겠다며 밤 잠을 자지 않고 기계와 씨름하더군요. 그래서 저와 아내는 ‘백두산 꼭대기에 팬티만 입혀 놓아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했어요. 별명도 ‘성실’이라고 붙여주었지요.” 고아인 이사장은 배는 곯지 않나, 아픈 데는 없나 항상 물어보는 이소장 내외에게 부모의 정을 느꼈다.

이사장은 1971년 뜻밖의 행운을 잡는다. 회사 운영이 어려워진 이소장이 당시 반장이던 이사장을 불러 놓고 “회사를 맡으라”고 했던 것이다. 이사장은 고물 타공기 하나와 거래처 전화번호부 한권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상호는 자신의 별명대로 ‘성실’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회사는 1년반만에 문을 닫았다. 돈이 모자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을 삼키면서 남의 철공소에서 직원생활을 하던 이사장은 1년 뒤 친구와 친척들의 돈을 얻어 사업에 재도전했다. 이사장은 회사를 다시 시작하자마자 무조건 한 주정회사에 찾아가 분쇄기 망을 납품하겠다고 했는데 샘플을 보고 흡족하게 생각한 주정회사가 바로 물건을 대라고 해 사업은 승승장구의 길로 접어든다. 경기 이천군에 2개의 공장을 세울 정도로 회사는 자리를 잡았고 지난해에는 연매출액도 40억원에 달했다.

위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사장은 공격적 경영으로 돌파했다. 1982년 근로자 1명이 다쳐 엄청난 보상금을 지급하느라 회사가 흔들렸을 때는 거액을 들여 신문광고를 함으로써 매출을 늘렸다. IMF 때도 거래업체의 잇딴 부도로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으나 이사장이 직접 개발해 특허를 얻은 ‘햇볕과 공기가 통하는 장독뚜껑’의 시판에 3억원을 투자함으로써 성공으로 반전을 시켰다.

이소장이 자살을 기도한 것은 장독뚜껑의 시판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회사를 이사장에게 물려준 이후 4번이나 사업에 실패하자 막막하더군요. 집에서 농약을 마셨어요. 병원에서 일주일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나 보니 이사장의 비통한 얼굴이 보이더군요. 서로 붙잡고 엉엉 울었죠.” 이소장은 “무조건 회사로 나오라”는 이사장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영업을 지휘하게 된 이소장은 장독뚜껑을 공전의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 터득한 영업 노하우와 한달에 보름은 지방출장을 가는 열성 덕분이었다.

“옛날 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불평 한번 안하시고 ‘우리 사장은 내 구세주’라면서 열심히 일하시는 소장님을 보면 저도 힘이 납니다.”

이사장은 요즘 「발냄새 없애는 동판 깔창」등 신제품 개발에 열을 쏟고 있다. 제품 개발에 힘이 들고 돈 들어갈 일에 걱정도 될 텐데도 신나는 표정이다. 그의 얼굴은 “소장님만 계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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