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8일부터 역사적인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다.그러나 이번 순방은 복잡한 지역정세와 미국의 국내 정치일정 등으로 의례적 수준 이상의 외교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가장 상징적인 방문’에 그칠 전망이다.
외견상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인도, 파키스탄 등 서남아 3국에 대한 클린턴의 방문이 주는 선전효과는 적지 않다. 미 대통령의 방문이 1971년 건국이후 처음인 방글라데시와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 이후 22년만인 인도 모두 클린턴의 방문을 ‘21세기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서막’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 임기 마지막 해라는 시기상 문제에다 지난해 10월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의 의회비준을 거부당한 행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면 CTB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 파키스탄 등 두 핵강국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은 어느 때보다 약하다.
백악관이 밝힌 인도 방문 의제는 파키스탄과의 오랜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 대한 긴장완화, 테러방지, 무역확대 등 ‘비핵(非核)’문제에 치우쳐 있다. 물론 핵확산 방지에 대한 양측의 논의는 이뤄지겠지만, “핵에 대한 양측 대화창구를 유지하는데 노력한다” 는 미국측 발언처럼 CTBT를 거론조차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냉전시대 소련과 전통적 우호관계였던 인도를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미국쪽으로 끌어들인다는 것도 미국이 내심 노리는 목적중 하나이다
군사정권에 대한 ‘불인정’표현으로 파키스탄 방문을 유보했던 백악관은 막판에 파키스탄이 미국의 오랜 우방이었다는 ‘전통’을 내세워 일정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5일간 전국을 순회하는 인도 방문과 달리 수도 이슬라마바드에만 5시간(27일) 체류한다. 또 외교관례상 가장 격이 낮은 공개회동 없는 정상간의 만남이 예정돼 있어 서남아 순방이란 구색을 맞추기 위해 파키스탄을 억지로 끼워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인도 정부는 벌써부터 클린턴의 파키스탄 방문에 대해 “군사정권을 용인하는 것이며, 지역안정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10일 발생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변호인 피살사건에 인도정부가 개입돼 있다” 며 “클린턴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이미지 훼손을 노린 인도 정보기관의 테러행위”라고 맞받아치는 등 양측 갈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클런턴의 이번 서남아 순방은 결과적으로 파트너없는 일방 외교로 흘러 경제협력 등 실무 차원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입력시간 2000/03/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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