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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돈요구에 몸살앓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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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돈요구에 몸살앓는 기업들

입력
200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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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했다가 나중에 당선되면 4년간 어떻게 버티려 하느냐. 그렇게 배짱이 좋으냐”“같은 학교 후배인데 밀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당선되면 당신 회사 현안 해결에 앞장서겠다”요즘 기업인들이 정치권으로부터 듣는 얘기다.기업인들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 ‘몸살’을 앓고 있다. 경영환경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뀌었는데 정치인들의 생각은 과거와 달라진게 거의 없다. 정치인들은 현금은 물론 인력(자원봉사자)지원에다 외상 물품까지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행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정치권의 실세들을 찾아가 ‘보험료’를 자진 납부하는 기업인도 있다. 보험료 내는 셈치고 정치권 실세들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호남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한 그룹은 지난해말 봇물을 이룬 이 지역출신 인사들의 후원회에 1,000만원씩의 후원금을 냈다. 그러나 최근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너나 없이 달려들어 ‘공천이 확정됐으니 이제 제대로 쓰라’는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건설회사인 K사 김모(58)사장은 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용인지역의 한 후보를 소개받아 2,000만원을 현금으로 건네줬으나 이틀 뒤‘액수가 기대했던 것보다 턱없이 못미쳐 서운하다’는 말을 전해듣고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국회의원 보좌관 이모(35)씨는 “중진들의 경우 그동안 꾸준하게 대기업에 컨설팅 용역을 알선하고 뒤로 수수료를 받거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로부터 커미션을 챙겨온데다 지난해말부터 올초에 걸쳐 후원회 등을 열어 이미 총선자금을 상당액 비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20억원을 써도 당선이 불투명하다는 ‘20당 불투명’설이 확산되고 있어 정치 신인들은 물론 중진들까지 기업체에 손내밀기에 나서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치자금 어떻게 요구하나

정치인들이 기업인을 잘 알고 있는 경우는 직접 연락을 취하게 마련이지만 주로 핵심 임원들을 통해 접근한다.

일반 제조업체보다는 공해배출 시비가 잦은 기업, 건설업, 유통업, 숙박업, 음식료업 관련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권이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는 빌딩, 아파트 건설사업 분야가 제1의 공략 대상이다.

최근에는 코스닥 열풍을 타고 벤처기업들이 거액의 기업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자 고교 선후배등 인맥을 동원해 벤처기업으로 달려들고 있다.

한 벤처기업인은 “벤처분야에서는 국회의원에게 반대급부를 기대할 것은 없지만, 고교동창회에서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서울지역 출마자에게 50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인력 지원에다 외상 선물까지

수도권 서부지역에서 대형할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48)사장은 가까운 친척을 통해 이 지역에 출마한 한 후보를 소개받았다. 그는 “선거 홍보물 배포등 일이 많아 인력이 너무 모자란다며 직원을 자원봉사요원으로 활용할 수 없겠느냐고 요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K사는 이 지역 출마 후보자들로부터 “정치자금 줄 돈이 없으면 선물로 돌리려 하니 가전제품이라도 외상으로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 회사 이모(47)사장은 “과거 경험상 낙선되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준다고 했고, 당선되는 사람은 ’현금은 없으니 다른 것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며 “그렇다고 모른체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부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자금을 주지 않았다가는 ‘괘씸죄’에 걸리고 액수를 놓고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례가 많다는 소문이 확산되자 기업인들은 빈번히 지방 출장을 가거나 아예 장기간 해외출장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돌아온 D그룹 모회장이 곧 유럽 출장길에 오르기로 했으며,

S그룹 모회장은 내달초 중국으로 출장가 총선 이후 돌아오기로 했다. H그룹 모회장도 해외 지점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이달말부터 4월 중순까지 유럽과 미국지역을 돌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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