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국내 보다 해외에서 더 대접받는다.”독일 주재 한 외교관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유럽 4개국 순방을 평가한 말이다. 원래 국빈방문이 초청국의 예우를 전제로 하지만, 김대통령은 순방국 지도자들로부터 예외없이 극진한 대접과 평가를 받았다. 이는 민주화 투쟁, 인권운동 등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의 전통에 옥고와 연금으로 점철된 김대통령의 이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교감은 정치, 경제적 성과를 도출하는 데 상당한 힘이 됐다. 우선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외연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순방국들이 우리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방안을 북한에 설득시키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했다. 우리 외교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정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 중심국들이 ‘햇볕론의 전도사’를 자임한 것은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이 여세를 몰아 민간경협 수준의 남북관계를 정부당국간 대화차원으로 격상시키자는 ‘베를린 선언’을 내놓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베를린 선언의 성패는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반응에 달려있지만, 미·일·중·러 4강에 이어 유럽 중심국들의 포용정책 지지는 북한에 수용을 강요하는 측면도 있다.
경제적 성과도 적지 않았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총 141억달러의 투자상담이 이루어지고 이중 100억달러 규모의 사업이 연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수준으로 진척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기업들이 우리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BOT(Build Operate Transfer·기부체납)방식으로 참여키로 한 사실은 외자유치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시와 밀라노가 패션동맹을 맺은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특히 한국을 e-World의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제안한 유라시아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이 순방국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은 점은 간단치 않은 성과이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문제는 10월 서울에서 열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중심의제가 될 전망이다. 이는 우리가 미래산업인 정보화 분야에서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측면 외에도 전세계적 현안을 중심적으로 다룬다는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는 효과도 내포하고 있다.
무형의 성과도 있었다. 순방국 지도자들이 김대통령 개인에 보인 후의는 한·유럽연합(EU)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될 전망이며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