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깊은 산중에도 어느 사이엔가 봄이 다가왔다. 각기 다른 맵시로 싹을 틔우고 물이 오르는 산천초목들을 바라보자니 법화경 약초유품의 말씀이 절절해진다.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안의 모든 산천과 계곡과 토지에 자라는 초목과 숲과 여러 약초들이 그 이름이 각각 다르다 해도, 짙은 구름이 삼천세계를 가득히 덮어 일시에 한가지로 비를 퍼부어서 두루 적시면, 초목과 숲과 여러 약초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과,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과,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들이 제가끔 이를 받아 생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 맺나니, 한 땅에 나며 한 비에 적시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도 이와 같아서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들에게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처럼 골고루 평등한 자비를 베푸시지만, 풀이나 나무들의 종류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중생들의 근기(根機)도 각각 달라서 각자의 능력만큼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다.
초목들이 똑같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자신들의 바탕만큼 성장하여 각각 다른 색깔의 꽃을 피우고 다른 모양과 맛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와 인생의 진리를 얼마만큼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숙되느냐 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심성(心性)에 좌우되는 것이다. 심성을 탁마하고 수련해야 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니, 대망의 21세기니 하면서 예년과 다른 감동으로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2000년이라는 서력(西歷)이 그다지 신선하거나 감동스럽지 않은 것 같다. 새 학년 새 학기에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청소년들처럼 새 봄 움터 오르는 새 싹과 새 순을 바라보며 느슨해진 우리들 마음을 다시 추스리자. 각각의 새 싹과 새 순을 틔우기 위해서 추위와 가뭄을 묵묵히 견디고 이겨내는 초목들처럼, 고통스럽고 여의치 못한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새해 첫날 가슴깊이 새긴 새 천년의 다짐과 각오에 싹을 틔우자.
해인사 경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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