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의 컴퓨터 칩 메이커 인텔(Intel)은 지난달 미 경제전문 포춘지가 선정한 ‘2000년 존경받는 10대 기업’중 고작 8위에 올랐다.인텔 경영진은 앞서 지난해 9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신경제를 주도할 e-비즈니스 선구자 25명’에 한 명도 끼지 못했다. IBM, 델컴퓨터, 시스코, AOL 등의 최고경영자(CEO)가 포함됐던 것을 감안하면 인텔이 위기감에 사로잡힐 만 하다.
실제로 인텔은 크레이그 배렛 (Craig Barrett)사장이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회장으로부터 CEO직을 물려 받은 2년전 영업 및 기업문화의 전면적인 개편에 돌입했다. 다양한 메모리 칩 생산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전념키로 했던 1985년의 전략수정에 이어 두번째 조정이다.
주력상품인 ‘펜티엄Ⅲ’ 등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의 매출을 10년 가까이 연 30%씩 증가시킨 주 수입원이다. 인텔은 여전히 이 분야 시장의 84%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인텔은 1997년 사이릭스칩을 이용한, 컴팩의 999달러짜리 염가 PC가 등장하면서 이상징후를 감지했다. 그해 저가 PC가 시장의 20%를 잠식하고, 주가도 30% 떨어졌다.
이듬해 저가형 셀러론칩을 출시, 어느 정도 만회했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만으로는 수익기반이 취약하다고 판단해 인터넷으로 선회했다. 소비자들이 대용량 PC 대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값싼 PC를 선호한 때문이다.
그로브회장은 “출구를 알 수 없는 전략적 변곡점에 놓여 있다. 인터넷이 만드는 미래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영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인텔은 1998년 2월 네트워크장비 사업에 뛰어든 것을 시작으로 정보단말기, 소비자 가전, 인터넷 서버, 무선전화 등 ‘e-커머스’와 관련된 거의 전 분야에 속속 발을 담갔다.
신속한 기술 확보를 위해 ‘인텔캐피털’을 설립, 350여개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 벤처의 주식을 소유했다. 지난해의 경우 12개 기업을 인수하는데 60억달러를 들였다. 인텔은 이와 별도로 사내 벤처를 통해 2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PC는 가고 통신(communication)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판단으로 움직인 지 2년여. 인텔은 지난 1월 컴퓨터가 아니면서도 인터넷에 접속, e-메일 수신을 비롯해 자료수집, 홈쇼핑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웹제품을 발표했다.
올 중반 출시된 이 기기에는 오랜 동반자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대신 ‘리눅스’를 채택할 예정이다. 배렛 사장은 “앞으로 5년내 웹 관련 사업들이 각각 시장점유율 1, 2위를 기록하며 연간 매출을 15-20% 늘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들어 주가가 40% 상승할 만큼 시장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물론 인텔의 변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휴대폰 기술의 선두주자 DSP커뮤니케이션스 인수로 무선장비 분야에서는 수익이 예상되지만 경직된 기업문화와 기술 부족으로 조만간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다만 내노라하는 기술기업도 선택의 여지없이 인터넷 기반 구축에 나설 만큼 이제는 ‘e-BIZ’의 시대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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