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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숨결로 세월을 느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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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숨결로 세월을 느껴봐요"

입력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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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감독 다큐멘터리 '숨결'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7년동안의 세월을 ‘숨결’(18일 개봉)로 매듭짓고 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곁을 떠난다. 그동안 여섯명의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아직도 바라던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더 매달리면 ‘미련’이란 생각에서다. “이제는 딴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바람이 난 모양”이라고 말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할머니들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변영주 감독(34)이 거부하는 세가지 단어가 있다. ‘페미니즘’‘특별’‘다큐멘터리’란 수식어. 그에게는 운동적이고, 차별적이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줄 모르는 감독이란 얘기로 들린다. 1993년 그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다가간 것은 그들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미치게 만든 1960, 70년대 장 뤽 고다르나 오가와 산스케의 다큐멘터리를 따르고 싶었다. 네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사람을 담아내는 그런 작품. 그래서 우연히 찾아간 ‘나눔의 집’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영화 한편하자”고 대들었다. 바로 되돌아온 말은 “꺼져”.

그순간 ‘낮은 목소리’에 대한 결심은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를 쫓아내려는 사람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내 영화를 소통의 도구로 주자. ‘인간과의 소통’은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다. 살아오면서 그가 갖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그 희망을 위해 그는 1년동안 할머니들과 그냥 놀면서 지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사회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숨결’에서 그는 듣기만 했다. 두편의 전작 ‘낮은 목소리 1, 2’가 충격과 적극적인 인물에 매달렸다면 ‘숨결’은 다큐멘터리 본연으로 돌아와 그들 로 하여금 차분하게 과거를 서술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들의 숨결도, ‘열혈청년’ 변영주의 숨결도 이제는 잔잔하다. 일본의 어느 평론가는 거기서 두 개의 반전을 찾아냈다. 과거 끔찍한 기억을 할머니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듣는 것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즉흥연극을 하듯 위험한 작업이었다. 정해진 날에 할머니가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도 없었다.”

변영주 감독은 무엇(일본군 위안부의 실체)을 알기 위한 의무감으로 ‘숨결’을 보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을 느끼기를 바란다. 50년이나 삼키고 살아온 오래된 기억. 할머니들의 존재를, 문제를 어렵게 만든 가장 큰 딜레마였다. 딜레마는 또 있다. ‘숨결’조차 아직 국내에서는 이벤트성으로 상영된다는 사실이다. 돈이 없어서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없어 소통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현실.

그 현실을 가슴에 안고, 나만 생각한다는 자괴감을 갖고 그는 상업 극영화로 나아간다. 5년 동안 틈틈히 준비한 ‘도쿄 엘레지’시나리오가 마무리되면 내년에는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는 ‘상업성’이란 말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넓게는 자신도 ‘숨결’에 관객이 많이 오기를 바라는 상업감독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은 5번이나 보았고, 아직도 ‘춘향뎐’으로 실험을 하는 임권택 감독을 좋아한다.

그에게 극영화는 욕망이고, 다큐멘터리는 두려움이자 상징적 고민이다. 욕망은 유희이고, 고민은 변화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평생 갖고 가겠다는 변영주 감독. 그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이다. ‘숨결’은 4월 1일 일본 5개 도시에서도 개봉된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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