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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2000년 문화탐험](1)하늘과 바람,폐허의 메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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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2000년 문화탐험](1)하늘과 바람,폐허의 메아리들

입력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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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기행] '고대에의 떠돌이...'연재를 시작하며

시인 고은(67)씨가 한국일보에 ‘고대에의 떠돌이-2000년 문화탐험’을 매주 금요일자에 연재합니다. 고시인은 지난해말 미국 하버드대·버클리대 객원교수를 마치고 귀국길에 이집트와 그리스, 터키 지역을 두달여 기행했습니다. 이 지역은 바로 인류문명의 발상지이자 동서문화의 교차로입니다. 기행문을 통해 고시인은 인류가 창조한 문화의 흔적과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성찰할 것입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신화와 역사와 현실, 고대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펼칠 고시인의 문명론적·명상적 에세이에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을 기대합니다.

문명은 항해라고 누가 말했더라? 그 말에는 얼핏, 흐르는 것 움직이는 것의 의미 냄새가 난다. 나는 그런 흐름의 한 파편처럼 떠돌았다. 지난 1년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의 일탈이었는지 모른다.

밤하늘의 무궁무진한 별과 함께 있었다. 황도 12궁에 갇혀있는 별자리 여기저기를 점성술사처럼 눈흘겨 보기도 했다.

옛 문명 혹은 문화가 있던 곳의 낯선 별들은 지상에 대해서는 늘 슬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토록 초자연적이었고 초인간적이기까지 한 웅대한 상고시대 문명들은 지금은 그 우렁찬 얼이 다 빠져나간 폐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무정한 잔존 폐허를 찾아간 밤에는 으레 거기에 와 있는 별빛으로 잠들었고 다음날에는 다시 숨찬 바람소리와 함께 떠나야 했다. 바람은 그 폐허의 대열주(大列柱)와 건물에 달라붙어 몇십만 명의 기도소리를 냈다.

폐허를 하직하면 바로 끝간데 모를 사막의 연속이었다. 그 사막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하나의 나라와도 같았다. 그 바람소리는 문명이 얼마나 나약하고 덧없는가를 은연중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실컷 그런 길을 가고 있었다. 길을 가는 것이 내 인생의 긴 주제인 것처럼.

하늘은 어느 때는 커다란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이 속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처연히 되비쳐주며 밤에는 검푸르고 낮에는 속절없게 짙푸르렀다.

구름의 층층에 그런 거울이 잠겨버리기도 하고 수습할 수 없는 이슬람 거리의 공기오염으로 닫혀버린 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일강 상류 쪽의 사막 오지 위에 끄떡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하늘은 차라리 영원한 극약이었다. 동부 지중해 에게해 위에도 하늘은 원한을 품은 원색이어서 내 온 몸에 전기가 흐르고도 남았다.

그런가 하면 흑해 입구에서 우러러 본 하늘은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고, 터키 서쪽 에베소의 하늘도 오래 입 다문 무저항처럼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혹은 번영지대를 찾아나선 길인데 내내 하늘과의 수작이 그렇게 많아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진 한반도의 가을 하늘에 대한 자존심이 다른 하늘들을 괜히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는 예의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네의 먼 조상들, 그러니까 인류의 미개사회는 하늘이나 별 따위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사느냐 죽느냐의 실존적 긴장이 하늘의 일보다 훨씬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종족, 부족에 대한 늦추지 못할 경계, 다른 동물과의 적대관계, 그리고 공룡 이후의 많은 육식동물에 대한 방어 앞에서 다른 여유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가뭄과 홍수 혹은 잦은 대규모의 지진과 같은 재앙은 또 무엇인가. 그래서인지 인류학자는 미개인의 설화에 하늘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공포와 불안의 조건들이 원시종교를 재빨리 낳을 법도 했건만 정작 그것은 뒤의 일이던 것이다.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한 카르데아 시대에야 비로소 하늘의 사상이 출현한 것이다. 카르데아는 바빌로니아 일대이다.

인간이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시대, 인간이 하늘로부터 어떤 계시의 정서를 받으려는 시대가 그때부터 가능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이 그 영혼적 영역을 하늘에까지 늘여간 것을 뜻한다.

고대문명의 흔적이란 고대인간들이 신을 자기편의 절대로 삼은 흔적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신 혹은 신들은 인간과 더불어 지상의 여기저기에 하나의 요소로 살고 있다가 차츰 인간이 하늘을 지향함에 따라 신들을 거기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하늘이 지상에 군림한다.

그래서 신화는 지상과 하늘을 임의로 오고 가며 신에게 인간을 반영시키고 인간에게 신들을 반영했다. 이런 사이 반인반신(半人半神) 또는 반인반수(半人半獸)라는 다채로운 산물도 만들어냈다.

이 신화세계는 때로는 역사와 현실의 세계와 자연스럽게 섞여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역사가 슬그머니 신화로 돌아가기도 하는 문화의 수수께끼를 낳기도 했다.

고대문명의 절정은 항상 신을 얼마나 장엄하게 섬기느냐와 그렇게 섬긴 신과 일치된 지배자의 권력의지를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질문을 낳는다.

지금은 해마다 1,000만명의 관광객을 ‘예약’하고 있는 그 문명의 흔적들을 살펴보노라면 그것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조금씩 나타남으로써 하나의 고착된 유산은 아니기 십상이다. 실지로 이집트 상나일 기슭의 기호가 고대 그리스로 건너가 오메가 기호로 정착된 것을 알 수 있다.

문명과 문명 사이에는 그러므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의 불가피한 활동이다.

공기의 이동, 그에 따른 기류의 발전과 함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날라다 주는 힘의 운행이 곧 바람이 하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특히 젊은 날 막을 수 없는 기운으로 벅차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대기 속의 자력도 우렁차게 발달해서 인간의 그 젊음과 함께 대기 속에서 천둥소리라도 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고대에의 여행 중 그런 바람을 종종 만났다. 그것은 세계의 일부인 바람에 대한 깨달음이기보다 바람이야말로 세계를 새로 세계화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인지 모른다.

중동지방의 한 자갈 많은 사막 언덕에 앉아있는 맹금류의 새 한 마리가 바람에 제 잔 터럭을 부스스 일으키며 꼼짝달싹하지 않는 오랜 시간을 눈여겨본 적이 있다.

그 녀석은 실로 존엄스러웠고 대지에서의 기품을 한없이 드높이고 있었다. 사람의 육안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까지 투시하는 그 묵언의 시야 전체가 이 세상 진리의 현장이 되는듯 했다.

나는 갑자기 자갈 하나를 힘껏 던져서 그 녀석을 쫓아버렸다. 얼마 뒤 그 이집트 솔개는 공중에서 유유하게 한 바퀴 돌아 기류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바람이 그치면 마치 귀가 먹어버린 것처럼 괴괴해진다.

그런 밤이면 수런수런 땅 속에서 생명의 움이 돋아 천지는 새 절기를 맞을 생각으로 간절해진다.

왠지 나도 예감이 가득해진다. 인간이 섬기는 하늘이 있고 인간의 문명들을 이어주는 바람이 있을진대 거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많은 관계들도 활짝 꽃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사막 저쪽에 오아시스가 있고 거기에 모듬모듬 살고 있는 베드윈족의 얼굴을 만나면 아, 이 세상은 나 혼자 내버려진 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나는 이웃과 남에 에워싸인 한갓 우연과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내가 사는 곳은 많은 낯선 곳에 이어진 필연과 같은 존재의 영역으로 여러 곳과 얽혀드는 것이다.

내가 가는 이집트의 상나일 아스완과 룩소르, 그리고 멤피스와 기자, 하나일과 나일강 델타지역 그리고 내 몽상 속의 알렉산드리아를 떠도는 동안 왜 4,500년 전의 인류 최초의 대문명이 있던 땅이 오늘날은 어이없는 거지와 협잡꾼, 그리고 강력범을 걱정하는 세상으로 되고 말았는가를 개탄할 때도 있었다.

몇해 전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이 어디인가. 석가모니와 수없는 성자들의 땅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그곳에는 전혀 옛 기억 따위는 필요없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고대 이집트 19왕조 람세스2세 시대의 종주국으로서의 긍지 따위는 지금 아무 데도 없고 그 석상이 서 있는 카이로는 장기집권에 지친 도시로 먼지 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터키 역시 오스만 터키 시대의 영광 말고 지금은 유럽공동체의 준회원으로 발돋움하고 있는데 그 문명의 행로는 새삼 야릇했다. 기독교 신약전서의 중요한 무대가 되는 터키 땅은 이슬람의 묵인 아래 자신들의 흔적을 겨우 유지하고 있고 그 밑의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제야 흙더미 속에서 파헤쳐져 납치되어온 처녀처럼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또한 그리스는 어떤가. 그 신들의 자유분방한 무대는 간곳 없고 지금은 ‘오소독스’라는 이름의 그리스정교회만이 그들의 윤리를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바다는 푸르고 집은 현기증이 나도록 흰빛인데, 식당 주방장 모자 같은 주교의 모자와 치렁치렁한 의상은 검정이다. 이와 함께 그리스 아낙네들 역시 검은 의상을 칭칭 감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리스의 여기저기에 가서 내가 서당개로 알고 있던 신화세계에 지난날의 찬란한 신탁을 더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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