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Fusion)이란 것이 그렇다. 잘 섞으면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을 넘어 새로운 맛까지 살리는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고, 잘못 섞으면 괴상한 맛이 된다. ‘신혼여행’(감독 나홍균)은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퓨전 코믹 스릴러’란 말은 웃음과 공포를 뒤섞었다는 것일 터이고, 제목을 新婚여행이 아닌 身魂여행으로 규정한 것은 다분히 영화가 풍자적이고 뒤틀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눈물과 감동까지 곁들인 비빔밥.사실 ‘신혼여행’은 이런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스타 한 사람이 끌고 가기 보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엇갈리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그들의 독특한 캐
릭터의 충돌이 영화의 맛을 살린다. 살인사건 수사물 형태로 웃음 속에서도 관객들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방식도 좋은 재료임에 틀림없다.
마치 7쌍의 신혼부부의 마음처럼 영화는 경쾌하게 출발한다. 그 경쾌한 발걸음은 준호(차승원)가 살해되고 일행인 최형사(황인성)가 그들을 상대로 수사를 한창 벌일 때까지 이어진다. 같은 상황(결혼식, 첫날밤)을 짧게 고리처럼 이어가며 신혼부부 7쌍의 성격을 묘사하는 연출의 재치가 기대 이상이다.
사이비 교도 부부(엄춘배, 류지영)의 기행(奇行)과 반전, 중년부부(이인철, 신신애)에게서는 ‘조용한 가족’의 냄새가 나고, 두 도둑과 최형사가 벌이는 웃음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를 닮았다. 등장 인물들이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진술하는 방식은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라쇼몽’과 비슷하다.
‘신혼여행’은 차라리 끝까지 신선하지는 않지만 감각적인 웃음으로 가는 것이 나을 뻔했다. 후반 공포와 스릴러로 갈수록 그나마 웃음에서 보였던 재치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텔미 썸 딩’을 모방한 구성과 감동을 위해 설정한 결말이 엉뚱하고 허술하다. 실험성이나 독창성 보다는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들을 모아 제대로 가공하기가 훨씬 어렵다. 감독의 말처럼 아무 생각없이 보면 재미있게 웃다 나오고, 꼼꼼하게 따지고 들거나 의미를 찾으면 구멍이 커 보이는 영화. 18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나홍균 감독 "항상 고상한 영화만 고집할 이유 있나요"
‘신혼여행’에 강우석 감독의 코미디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나홍균 감독(39·사진)은 5년(1988-1992)동안 그의 조감독이었다. 그후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을 열어 6년동안 ‘딴 짓’을 하다 11년만에 겨우 늦깎이로 데뷔했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제3 조감독이던 김상진이 ‘돈을 갖고 튀어라’로 정식 감독이 된 것이 95년이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의 대답이 의외다.“평생 할건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낙천적이다. 그래서 코미디를 좋아하고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해버린다. 여러 장르를 복합시킨 것은 자신감과 욕심 때문. 결과는 아쉬움만 컸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좀 더 치열하게 싸우고, 버티지 못하고 쉽게 넘어가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후반 멜로가 약하다. 특수 분장이나 효과로 리얼리티를 살리지 못했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순간순간 재미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다. “너는 매일 고상한 책만 보느냐”고. 그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라이센스를 얻었다. 이제는 먼길을 떠날 수 있기에 그는 처음의 아쉬움과 실수, 속상함을 다 ‘약’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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