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최남단인 송악산은 이중 분화구다. 화산이 터져 생긴 분화구 속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해서 또 하나의 분화구가 형성됐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면 커다란 쟁반위에 동그란 찻잔이 놓여있는 형국을 이룬다. 찻잔에 해당하는 가운데 분화구는 화산이 터지고 난 직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주도의 300여개 분화구 중에서 가장 생생한 폭발현장을 보여준다.■송악산은 제주도의 정서가 가장 짙은 곳이다. 남쪽 마라도에서 올라온 봄이 제일 먼저 상륙하는 곳이다. ‘절(파도)소리’를 들으며 해변 사람들은 환상의 이어도로 가는 길이 “저 산 남쪽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먼 곳에서 보면 말잔등같이 밋밋한 동산인 듯하지만, 송악산 절벽에 서서 보면 바다와 섬과 들판과 산과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서 제주도 어디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자연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일제 때부터 송악산 일대는 군사기지였다. 6·25때는 육군 제일훈련소가 이 곳에 있어서 50년대 송악산은 군사훈련장으로 박격포세례를 안받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제주도에 관광개발 붐이 일 때에도 송악산은 목동과 해녀들의 놀이터였을 뿐이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관광객의 취향이 달라지면서 송악산은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 변했다. 이런 변화에서 돈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환경파괴의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업자와 주민들의 개발의욕도 들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제주도정 책임자와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다. 제주도특별법을 만들며 생각해 낸 개발계획이 바로 분화구를 파괴하며 대규모 위락시설을 허가해 주는 것이었다니 정말 난센스다. 게다가 군(郡)소유지까지 업자에게 팔아치웠다. 누가 환경영향평가를 했는지 의문스럽다. 송악산 개발은 그 본모습을 보존하면서 사람을 끌 수 있는 지혜의 산물이어야 21세기에 맞는 정책이다. 분화구를 허무는 송악산개발은 마라도 앞바다의 ‘다금바리’도 비웃을 일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