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결정적 고비를 넘지 못하는 남북관계를 화해와 교류쪽으로 확실히 이끌기 위해 던진 대북제의다. 민간차원의 교류와 경협이 진전되고 있는 지금, 남북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공존의 틀을 만들면 냉전구조를 해체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남북 당국간 협력의 전제가 상호신뢰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내심 두려워하는 흡수통일을 결코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특히 이런 메시지를 독일 통일의 상징적 장소인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밝힘으로써 북한의 안전을 국제적으로 담보하는 효과를 노렸다.
이런 맥락에서 김대통령은 연설문의 상당부문을 북한에 대한 신뢰구축 의지로 채웠다. 김대통령은 독일통일의 교훈으로 동방정책의 일관된 추진, 이를 통한 의혹과 불신 해소, 주변국의 우려 불식, 인내와 성의 등 신뢰문제를 제시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며, 포용정책이 흡수통일이라는 복선을 깔고 있지 않다는 일종의 약속이었다.
김대통령은 이런 신뢰논리를 바탕으로 당국자간 협력이 이루어지면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도 급속히 해결될 수 있다는 이해관계의 논리를 내놓았다.
민간차원의 교류는 작은 규모의 미봉책일 뿐이며 근본적으로 북한을 살리려면 우리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이를 통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민간기업이 대북투자를 하려 해도 자금을 떼일 것을 두려워하니 정부당국간에 투자보장협정 등이 체결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대통령은 당국자간 협력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베를린 선언의 4번째 제의이자 결론으로 특사교환을 던졌다. 정상회담처럼 북한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실질적인 논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묘수로 특사교환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베를린 선언을 수용하느냐이다. 과거 북한은 무조건 이런 제의를 일축했다. 이번에도 공식적으로는 거부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면에서 북한은 베를린 선언의 ‘취지’를 이해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금강산 관광 등 민간차원의 교류, 서방국가들의 지원과 관계개선을 통해 분명히 반대급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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