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배화여고에서 만났다. 나는 28세의 총각 선생으로, 아내는 고 1의 여학생으로. 내가 허름한 양복에다 후즐그레한 바지를 입고 첫 수업을 하는 순간 아내는 첫 눈에 반했다고 했다.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교단에 서서 “아 베 체 데, 데어 데스 뎀 덴”을 가르쳤고, 소녀는 설레는 가슴으로 나를 기다리고, 나의 모습을 보려고 교정을 서성이고, 밤마다 나의 꿈을 꾸었다.(주:몰래 훔쳐 본 아내의 여고시절 일기에서 확인한 사실)
아내의 고향은 전남 고흥. 아버지 역시 나처럼 판소리를 좋아하시고 북도 치시던 멋쟁이였다. 아마도 아버지의 피가 판소리를 흥얼거리는 독일어선생을 좋아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 당시 나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연극과 판소리에 미쳐 있던 나는 광대끼를 이기지 못해 2년 뒤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 뒤 내가 연극을 할 때마다 단발머리 제자가 찾아와 꽃다발을 주고는 사라졌다.
아내는 신문의 문화면을 읽으며 언제 있을지도 모를 나의 공연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공연 보러 가기 전날엔 잠을 설치다가, 공연하는 동안엔 내 얼굴만 바라보다가, 공연이 끝난 뒤엔 몇마디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일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덧 스승과 제자였던 두 남녀는 몰래 만나 커피 한 잔을 하게 되고, 사제 관계와 연인 사이의 감정이 뒤섞인 묘한 만남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한 사람은 환상 속에서 꿈을 키우고, 한 사람은 극장의 어둠 속에서 무명 배우의 고달픈 세월을 보내는 동안 소녀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 선물을 해줄 수도 없었던 나는 대학생 애인이 데리고 간 경양식 집에서 침울하게 맥주만 들이켰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결혼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 무렵에 여전히 결핵을 앓고 있었고, 1년의 수입을 통틀어도 100만원이 채 안되던 때라 결혼에 도통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이리저리 둘러대며 두서없이 떠들어댔다.
“나는 방탕한 사람이다. 나는 형편없이 못난 사람이다. 나의 미래는 비참할 것이다. 나를 잊고 좋은 남학생을 사귀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한참을 듣고 있던 소녀가 내 말을 막고 입을 열어 조용조용히 얘기했다. “왕을 사랑하면 왕비가 되는 것이고, 거지를 사랑하면 거지 아내가 되는 거예요. 전 거지 아내가 되고 싶어요.”
가난에 시달리고 예술에 시달리고 고독에 지친 내게 그 말은 샘물과도 같은 활력을 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군소리 집어치우고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언니와 오빠들을 차례로 만났다. 내가 본래 가난한 줄은 알았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 그토록 알거지가 된 줄은 몰랐던 아내는 식을 올리기까지 여러번 놀라기도 하고 집안 식구의 반대 때문에 울기도 여러번 했다.
그러나 식을 올리고선 이내 거지 아내가 되어 친정에 가서 반찬도 얻어 오고 옷가지도 집어 오곤 했다. 아내의 헌신적인 간병 덕분에 15년을 끌어 오던 결핵이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낳았다.
그건 정말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딸이 태어나고 아들이 태어나는 신비한(?) 출산과 양육의 세월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생활은 뜻대로 나아지지 않고 언제나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짜증과 눈물과 고함과 화해가 얽히고 설키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결혼 후 5년 쯤이 지난 어느 날의 대화 한토막.
“참 이상해요.” “뭐가?” “당신은 쉴 새 없이 작품을 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데 왜 늘상 생활에 쫓기고 불안하기만 하지요?” “줄 타는 광대가 줄 위를 걸어 가다가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땅 위로 떨어져서 목숨을 잃고 말아.
나는 그런 줄 위를 걷고 있지.” “당신은 세상을 너무 어렵게 살아가려고 해요.”“그게 내 특기야. 당신, 어렸을 때는 그런 나를 좋아했잖아?” “그 때는 철부지 소녀였지만 지금은 살림을 하는 주부예요. 현실은 꿈을 자꾸 퇴색시켜요.” “현실이 퇴색시키는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퇴색된거야.” “당신은 꿈만 먹고 배가 부를지 몰라도 아기나 나는 그렇지 않아요. 아기하고 나는 당신이 타는 줄 위에서 불안에 떨어요.” “그 불안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 열심히 줄 위를 걸어서 건너편 절벽에 도착하는 방법 뿐이야. 나와 함께 신념을 갖고 걸어가자구.”(주:실제로 이렇게 멋지게 얘기하지는 않았음)
어쨌든 아내는 때로는 나의 언변에 속아, 때로는 소녀 시절의 환상에 속아서 불안하고 힘겨운 광대와의 결혼생활을 15년째 꾸려오고 있다. 이제는 중년의 주부가 되어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누이처럼 변덕쟁이 남편을 돌보고, 사춘기가 되어 가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내가 국립극장장으로 선임되었을 때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다.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묻자, 아내 왈 “결혼하고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잖아요.” 그러더니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또 눈물을 글썽인다. “당신이 새벽부터 밤까지 밖에만 있으니 너무 싫어요.” 여자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김명곤은 누구?
1952년 전북 전주생. 연극 영화 국악 등 예(藝)에 두루 능한 만능 광대. 연극 「아리랑」「점아 점아 콩점아」등 수많은 연극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 영화 「바보선언」「서편제」「태백산맥」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부인 정선옥(38)씨와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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