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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山寺를 고적하다 하는가

입력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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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까만 눈을 가진 청솔모가 나무 위를 바쁘게 오간다. 가지에 머물렀던 이슬이 흔들려 얼굴에 떨어진다. 후두둑, 봄기운을 머금은 물방울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산사로 오르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그러나 조용하지는 않다. 얼음이 풀리며 굵어진 계곡물이 바위를 쓸어내리는 소리, 딱따구리일까? 못질하듯 나무를 쪼아대는 새소리, 산 안개가 삼나무숲을 감도는 소리…. 봄은 어느새 산에 들었다. 요란하지 않은 그윽한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선암사(仙巖寺·전남 순천시 승주면 죽학리)는 전남도립공원인 조계산(884㎙)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국내에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비로암 자리에 신라말 도선국사가 큰 절을 일으켰다. 한 때 60여 동에 달하던 대가람은 전란과 화재를 거듭 겪고 20여 동으로 줄었지만 그 위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제400호) 등 7점의 보물을 중심으로 깊이와 아름다움이 건재하다. 산 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번화한 반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을 내뿜는다.

선암사 계곡길은 아름답다. 사하촌(寺下村) 괴목마을에서 1.5㎞를 걸으면

절에 닿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길이다. 자동차로 오르는 사람들은 곧 후회한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왼편의 계곡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걸음을 맞춘다.

이 길은 자연이 스스로 빚은 수목원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이름 조차 낯선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소갯말을 걸어 놓았다. 얼마 못 가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숲과 만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직립의 아름다움. 광장과 식수대가 있고 삼나무 아래 깊은 그늘 속에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걸음을 쉰다.

쉼터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昇仙橋). 보물로서의 기품이 당당하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았다.

300년 가까운 세월의 폭우와 급류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선암사 경내는 지금 봄을 맞는 준비에 한창이다. 잎사귀에 노란 반점이 난 금식나무는 벌써 열매를 맺었고, 매화는 막 터질 듯 망울이 부풀었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단청이 바랜 절집들도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다. 3월 중순이

면 이 곳은 꽃세상이 된다. 후원에 있는 무우전(無憂殿)의 매화가 가장 볼 만하다. 무너질 듯 낡은 돌담을 따라 1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줄지어있다. 수령 300여년의 매화나무 둥치엔 이끼가 두껍고, 잔가지 마저도 싱싱함이 덜하다. 그러나 그 노목이 피워내는 꽃은 화려하기만하다. 어둠이 내리고 달빛이 꽃색에 묻어나면 영락없는 부처의 세상이다. 그리고 새벽녘의 목탁소리.

봄 세상 속에서도 산사는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다. 중생의 봄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선암사주변 가볼만한 곳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한 조계산은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을 호령하는 산이다.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힌다. 비교적 완만한 산세에 등산로가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산행에 적합하다. 선암사-정상-굴목재-마당재-송광사의 완주코스는 약 10㎞로 4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는 능선코스는 8.2㎞이다. 문의 순천시 산림과(0661)749-3512.

조계산에서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인 순천시 낙안면에 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민속마을(0661-754-6632·사진)이 있다. 민속마을 중에서 최초로 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시대의 성(城)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碑), 장터, 초가 등이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고 그 건물에서 아직도 108세대의 주민들이 생활한다. 옛 주막을 닮은 마을 주변의 음식점들도 운치가 있다.

주암호는 순천시, 보성군, 화순군에 걸쳐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9개 읍면 49개 마을이 댐 축조로 수몰돼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을 낳은 곳이다. 8년의 공사 끝에 1992년 완성됐고, 7억700만톤의 물이 고여 있다. 호수 양켠에 생긴 145.5㎞의 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주암댐관리사무소 (0661)749-7204.

주암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선사유적을 옮겨서 복원해 놓은 곳이 고인돌공원(0661-755-8363). 수몰지역에는 구석기 유적, 집단 취락지, 고인돌, 백자 도요지, 선돌 등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고인돌군(群)을 1만8,000여평의 공원에 옮겨 놓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선암사 가는길과 쉴곳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빠져 857번 지방도로로 우회전, 약 6㎞를 달리면 선암사 주차장에 닿는다. 봄빛을 만끽하려면 전주IC로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나 17번 국도로 임실-남원-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들어가는게 좋다. 순천역에서 선암사행 시내버스(1번, 100번)가 하루 16회 운행하고 승주읍에서 택시를 타면 10분(4,000-5,000원)정도 걸린다. 선암사 주차장은 약 150대의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으며 주차료는 소형 1,000원(시간제한 없음), 조계산도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1,200원, 어린이 600원이다.

쉴 곳

순천시내에 시티관광호텔(0661-751-3792) 로얄관광호텔(741-7000)등 50여개의 객실을 갖춘 시설이 있다. 선암사 주변에는 남일각(754-6188) 새조계산장(751-9121) 현대산장(754-9102)등 10여 곳의 여관이 있다. 괴목마을에는 민박을 치는 집이 많다. 인원과 방의 크기에 따라 1만5,000원에서 3만원선이다.

먹을 것

추어탕이 순천의 별미 중 으뜸으로 꼽힌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재래식 간장과 된장, 들깨 등으로 간을 맞춘다. 뼈와 살을 분리해 뼈만 갈고 살은 그대로 넣어 쌀뜨물에 끓인다.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등 남도의 대표적인 김치를 곁들인 맛이 일품이다. 풍덕동의 투가리추어탕(0661-742-0862) 등이 유명하다. 농익은 젓갈류와 싱싱한 해산물, 정성스럽게 무친 나물이 한 상 그득 나오는 호남지방의 백반도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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