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왕이다]정동극장의 예
관객을 ‘돈’이 아닌 ‘왕’으로 대접하는 공연장은 없을까? 있다. 바로 덕수궁 옆 정동극장(극장장 박형식)이다. 400석 규모의 이 극장에 들어서면 입구에 걸린 색다른 현판이 관객을 반긴다. ‘인간주의 선언’이라고 씌여 있다. 관객이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극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 극장이 1999년부터 관객을 위해 실시해 오고 있는 개혁들을 보면, 그 말이 헛된 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x장이요!!” “xx원이예요!” 바닥에 코딱지만하게 뚫린 창구를 통해 손님과 직원이 악다구니를 써 대는 풍경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우선 이런 ‘쥐구멍 매표소’는 여기 없다. 외국서도 매표 창구는 여전히 그 모습이지만정동극장의 개혁은 극장측의 오만과 편견부터 부수자는 ‘열린 매표소’에서부터 시작한다.
문화 욕구가 왕성한 30대 주부들을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아기들을 맡아 돌봐 주는 어린이 놀이방도 설치했다. 6평 규모의 아담한 공간에 시중 놀이방을 연상케 하는 쾌적한 시설이다. 소지품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은 물론, 화장실 입구에는 아기를 잠시 앉혀놓을 수 있는 걸개도 있다.
로비에는 ‘극장 속의 작은 미술관’이라는 화랑도 만들었다. 막이 오르기까지, 기다림의 무료함을 알찬 문화적 시간으로 채울 수 있게 했다. 순수 회화와 판화를 중심으로 한다.
정동극장은 도심 속의 고궁이라는 입지적 이점을 내세운 각종 문화 이벤트들로 극장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홍보해 왔고 인기를 끌고 있다. ‘추억의 클래식, 추억의 소리’ ‘효도문화 티킷’ 등 아이디어 기획 공연물 등이 그 예다. 또 문화소외층을 겨냥해 ‘틈새문화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사례로도 꼽힌다. 30~40대 주부를 위한 ‘돌담길 음악회’, 좀 더 나이 든 주부를 위해 신파극 악극 여성국극 등으로 꾸민 ‘지나간 것이 그립다’가 좋은 예다.
정동극장은 가끔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1995년 12월의 ‘돌담길 음악회’ 때는 주부 관객들을 위해 군밤 한 봉지씩을 선물했다. 직장인 대상의 ‘정오의 예술무대’ 때는 주머니 얇은 젊은 샐러리맨들을 위해 1,000원 짜리 커피를, 중년 대상 ‘돌담길 음악회’ 때는 문화상품권 ‘청실홍실 티킷’을 판매했다.
1999년 12월 극장 경영과 혁신의 노하우를 정리한 ‘극장경영’을 발간, 민간 공연장 최초의 체계적 경영 보고서를 남긴 정동극장의 홍사종 전 극장장(숙명여대 교수)은 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우수 경영사례를 발표했다. 그의 결론은 ‘거꾸로 보면 보인다’였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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