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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다한 '당당한 패장' LG 김철용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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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다한 '당당한 패장' LG 김철용감독

입력
200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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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팀 졌지만 한국女배구는 이긴셈총성없는 전쟁은 끝났다. 승자와 패자의 명암도 갈렸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 승부의 세계.

그러나 이번 슈퍼리그 여자부의 결과를 지켜보던 배구팬들의 관심사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천하무적 LG정유가 왜 무너졌지.” 승자의 우승비결보다 패자의 진 이유에 더 쏠렸다. ‘당대 여자배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김철용감독(46)을 만나봤다. 그리고 2개월여에 걸친 피말렸던 시간과 순간들을 들어봤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요. 이번 대회의 경우 많은 배구팬들은 현대의 슈퍼리그 정상정복 못지 않게 초유의 9연패(連覇) 신화를 창조한 LG정유가 10연패 문턱에서 힘없이 주저앉은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경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1차전을 먼저 내 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상대팀 선수들에게 ‘LG도 넘어 가는구나’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거죠. 관중문제때문에 경기일정을 주말 연속경기로 조정한 것도 노장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우리로서는 불리한 결정이었습니다.

관중을 위한다는 명분에 일정변경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원래대로 중간에 하루 휴식을 취했더라면 결과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투자적인 측면에서는 뿌린대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현대는 우승을 위해 그동안 많은 돈을 들인데 비해 우리는 IMF의 여파로 좀 주춤했습니다. 결국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만큼 아쉬움은 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현대의 우승에는 저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현대 세터인 강혜미는 국가대표팀에서 장신팀에 대비해 제가 애써 가르친 비책을 이번에 우리팀을 상대로 유감없이 써먹었습니다(웃음). 왼쪽주공인 구민정도 마찬가지구요. 대표팀감독으로서 타팀선수라고 썩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여자스포츠가 침체에 빠져 있는 것은 배구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닙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트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어 주던 많은 팬들을 올시즌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현대의 우승은 한편으론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모을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연히 라이벌이 있어야 발전합니다. 많은 투자와 기량향상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팀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발전속도는 더욱 빨라지겠죠. 그런 점에서 현대의 우승은 여자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좋은 현상으로 여깁니다. 이제 우리 팀은 도전자의 입장이 된 만큼 부담감이 없습니다. 새로운 전술전략을 개발해 한 차원 더 높아진 배구를 해보겠습니다.”

- 대개 여자팀은 감독이 아무리 처신을 잘해도 뒷소리가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김감독은 일신여상 감독시절에도 그랬지만 LG정유가 9연패를 해 오는 동안에도 일체의 잡음이 없었습니다. 비결이 있나요.

“지도자와 선수간의 신뢰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줍니다. 즉 선수를 선수로만 보는 게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은퇴후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모색해 줍니다.

우리팀 선수들의 대학진학이 그중 한 예입니다. 여자배구선수들은 고졸이 학력의 전부인데 반해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학벌을 중시하기 때문에 은퇴후 생길 지도 모를 불이익을 미리 대비시키는 것 입니다. 운동은 체력을 유지할 정도면 되니까요.”(LG정유 선수들은 입단후 대부분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다)

- 김감독을 공부하는 지도자의 전형으로 꼽는데 이론이 없습니다. 지도자관(觀)은 무엇인지, 그리고 메모광으로도 유명한데 내용과 지금까지의 메모량은 어느 정도인지요.

“먼저 지도자는 윤리와 도덕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반드시 정직해야 합니다. 새 요리는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제맛이 나듯이, 마음도 심령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 성결합니다. 하물며 선수들에게는 한치의 부끄럼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합니다. 반대로 거짓말하는 선수를 제일 싫어합니다. 이런 점들이 저와 선수들 사이에 깊은 신뢰로 쌓이고, 또 오랜 세월에도 불화없는 팀으로 유지되는 근간이기도 합니다.

저의 메모습관은 배구지도자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죠(웃음). 지금은 요점만 정리하지만 초창기에는 챙기고 기억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던지. 지금까지 사무용노트로 15권 정도됩니다. 주로 경기중 일어나는, 평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나 전술 등에서부터 노장들의 식사와 목욕 등 체력관리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김감독과 현대 유화석감독은 학교(남산공전) 동문관계면서도 사이가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남산공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한솥밥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유감독은 남산공전 배구팀이 해체되면서 대경상고로 옮겼고 저는 배구팀이 재창단될 때 창단멤버로 들어갔습니다.

이런저런 관계를 다 떠나 주변에서는 저와 유감독을 라이벌로 자주 대비시킵니다마는 저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업종의 동업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코트에선 오직 승부에만 신경을 쏟고 경기 끝나면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립니다.”

- 장기집권이 무너지고 나면 휴유증이 큰 법입니다(웃음). 특히 LG정유는 주전들의 나이가 많은데 비해 「젊은피」 수혈은 그동안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장윤희 홍지연 오윤경이 은퇴할 경우 전력 차질이 예상되는데요.

“물론 주전들과 비주전들간의 기량에는 격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약한 호랑이도 용맹한 호랑이들과 있다보면 저절로 닮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한솥밥을 먹으면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기본은 되어 있다고 봅니다. 일단 정신력이 다듬어져 있기때문에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합니다.”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자배구계는 IMF이전 9개팀에서 현재 5개팀으로 줄어들고 관중도 급감하는 등 많은 현안을 안고 있습니다.

“비단 여자배구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배구가 살아 남으려면 우선 프로화부터 해야 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대우를 해주어야 우수한 선수들이 오래 현역으로 남아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고 팀들도 생겨날 것입니다.

내년에 프로화 계획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임이 맡겨진 만큼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철용 프로필]

선수생활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1982년 일신여상 여자배구감독에 취임해 118연승의 신화를 만들어냈고 88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호남정유(현 LG정유)에선 91년부터 지난해까지 슈퍼리그 9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LG정유의 92연승 기록도 이 기간에 작성했다. 비록 지난 4일 현대와의 챔피언 결정전서 1승3패로 져서 10연패(連覇)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국내 여자배구 최고지도자라는 명성에는 이론이 없다. 93년부터 96년까지 여자대표팀감독을 맡아 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서 32년만에 우승을 일궈냈고 지난해부터 다시 대표팀을 맡아 9월 시드니올림픽에 도전한다.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남재국기자

jk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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