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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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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

입력
200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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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이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범했던 역사적 과오들을 인정함으로써 2000년 대희년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발표된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범죄’라는 문건은 십자군 원정과 유태인 탄압, 각종 고문형, 신대륙 원주민 학살 등을 반성하고 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2일 이 문건을 바티칸 미사를 통해 공식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회가 견지해온 무오류성의 교리를 뒤엎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역사적 오류와 범죄를 반성하고 고백하는 진실에 대한 용기에서 새 시대다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교황청이 과오를 인정한 십자군 원정은 1095년부터 4년간 7만명의 예루살렘인을 학살하고 약탈한 전쟁이다. 원정은 6차까지 반복되었다. 사학자들은 십자군 원정이 그리스도교와 회교간의 평화 공존 기회를 영영 잃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두 종교 사이에는 충돌이 재발할 여러 동인(動因)과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교황청의 고백을 보면서 근래 제기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 먼저 연상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도 의미가 커지지만, 특히 2025년에는 회교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추월함으로써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의 문화충돌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다.

교황청의 반성으로 두 종교 간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 나아가 세계의 영구적 평화에 기여하기 바란다.

고백에는 유럽에서의 마녀사냥과 가혹한 형벌, 16세기 멕시코 원주민을 1,50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어들게 한 신대륙의 학살 방조, 유태인 박해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 침묵한 점 등 종교적 양심을 자극해온 여러 통점(痛點)들이 망라돼 있다.

교황청의 고해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 95년 한국천주교가 ‘사목’지 특집기사를 통해 식민지배를 묵인하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허용한 역사적 과오를 뉘우치고 거듭나기를 천명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개신교 지도자들도 97년 일제 때의 신사참배와 유신정권 지지, 5·6공 정권에 대한 협조 등을 회개하는 참회록을 발표했다. 잘못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과 참회는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는 지행일치로 이어져야 제값을 지닌다.

모든 종교적 성찰과 그에 바탕을 둔 실천이 사회 구석구석을 밝혀주기 바란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탐욕을 정화시켜 주고, 그들의 반목과 모략에 실망한 국민에게 맑은 물 같은 위안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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