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로 전개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21세기 과학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라야 할 것이다.과학기술은 인간만, 그것도 일부 지역의 특정 민족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잘 살게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 생태계 역시 함께 살아 남게 해야 한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해 자원과 동력은 더 이상 견딜 수 업는 시점에 도달했다. 무한한 성장은 유한한 생태계의 벽에 부딪혔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화를 위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우리 과학기술 교육은 아직도 20세기적 과제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교육은 대학의 전반적 낙후성과 함께 세계 수준에 크게 못미치는 형편이다. 한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도 세계적으로는 128번째 대학에 불과하다.
우리는 분단과 대립의 상황에서 과학기술로 경쟁한다고 하면서도 대학과 과학기술 교육·연구기관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은 교육 수준의 향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21세기에 다시 기적을 바란다면 교육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IMF 위기 이후 고도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대학 정부 산업계의 연구기관들은 존폐위기에 처해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은 제일 먼저 연구기관에 떨어졌다. 예산삭감으로 연구원을 잃었고 연구자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연구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우리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정책이나 기업 구조조정은 나름대로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처사는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을 생각하고 자주적 산업의 토대의 마련을 생각할 때 위험천만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러나 교육투자 없이, 연구실에 투자하지 않고 이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환상에 불과하다. 서울대 학생 1명에게 투자되는 돈이 연 541만원인데 반해 미국의 하버드대 학생에게 투자되는 돈은 5,998만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평화를 위한 과학기술, 사람을 살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인문사회과학교육을 등한히 하거나 망각할 수도 없다. 인간의 역사를 모르는 과학자, 문학과 철학 예술을 무시하는 기술자들이 만드는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는 인쇄기술, 한글창제, 거북선 등 자랑스러운 과학기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조상의 역사를 이어 받아 새천년에는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 정상에 도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함인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명예석좌교수·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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