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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반상 '루이초식' 시대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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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반상 '루이초식' 시대 열리나

입력
2000.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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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 "패러다임 바뀌고 있는중"‘루이 초식(招式)’에 ‘돌부처’마저 맥없이 무너지다니….

‘돌부처’이창호 9단이 3일 KBS 특별대국에서 ‘반상의 철혈여제’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에게 또 다시 참패를 당했을 때 한국기원 검토실은 우려와 곤혹감으로 가득했다. 전력상 도저히 맞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에게 한달 간격으로 두번씩이나 불계패를 당하다니.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산바둑으로 ‘신산(神算)’의 경지에 오른 이 9단이 아니던가.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바둑 패러다임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10년 가까이 한국바둑을 지배해온 ‘돌부처’식의 참고 기다리는 수비바둑이 ‘루이 초식’으로 상징되는 공격바둑에 머지않아 역전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전투보다는 타협을 통해 실리를 챙기는 법을 터득할 줄 알아야 ‘고단자’대접을 받았던 아마추어 바둑계에선 요즘 축(逐)만 안되면 끊고 싸우고, 바늘 끝만한 틈만 보이면 찔러 들어가는 루이 스타일의 전투형 바둑(일명 ‘루이 초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웬만한 사이버 대국에 접속해 보면 끝내기 단계에서 승부하는 ‘무미건조한’ 집바둑은 찾아보기 힘들고, 온갖 기수와 묘수를 동원한 화끈한 대마싸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창호의 등장 이후 한동안 미세한 끝내기와 집바둑이 선풍을 일으키던 분위기와 사뭇 대조적이다.

프로 바둑계에도 공격형·수비형 기사간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이창호의 수비바둑이 올들어 급격한 난조(현재 3승4패)를 보이면서 기풍이 유사한 기사들도 덩달아 깊은 슬럼프에 빠져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혀온 최명훈 7단. 이 9단과는 75년생 토끼띠 동갑내기에다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고, 고래힘줄 처럼 질기디 질긴 기풍 때문에 별명(‘돌하르방’)까지 유사한 최 7단은 최근들어 기력이 급강하, 주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 대회 준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한 제31기 SK엔크린배 명인전 본선리그에선 목진석 4단 등 공격형 신예기사들에게 맥없이 2연패를 당해 도전권 확보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이 외에도 기다림과 계산을 주무기로 하는 이창호식 실리바둑을 빼닮은 안조영 5단, 김명완 4단 등 신예 기대주들 역시 이렇다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예상 외의 성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전투형 기사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빠른 행마와 기습공격에 능한 ‘반상의 괴동’목진석 4단은 올들어 7연승, 무패행진을 이어오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유창혁 9단은 제4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 오르는 등 7승2패의 쾌조를 보이고 있다. ‘속력행마’의 달인 조훈현 9단은 국수전에서 루이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최근 5년여동안 가장 높은 70%대의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과 지칠줄 모르는 난전(亂戰)으로 지난 해 당당히 승률 1위에 오른 루이 9단은 올들어 현재까지 11승 3패를 기록, 지난 해의 신화를 재연할 기세다.

과연 이창호식 수비바둑은 ‘루이 초식’에 밀려 종언을 고하고 마는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 바둑의 고질적인 약점이던 종반 끝내기와 갖가지 이론적 허점들을 보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해온 이 9단의 계산바둑이 하루아침에 용도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철균 6단은 “이 9단의 바둑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병법의 전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예”라며 “기회의 포착이나 형세판단, 수읽기나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전투바둑보다도 강한 ‘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공격바둑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그동안 이 9단에게 준우승의 불명예를 안겨준 기사는 조훈현, 유창혁 9단 등 전투형 기사들뿐이었다”며 “이 9단을 넘어서려면 공격바둑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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