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거리에는 MBC 드라마 ‘허준’에 나온 목초액(木草液)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많이 생겨났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주요 서점에선 허준과 관련된 서적이 불티나게 팔린다. 한의원도 호황을 누린다. 이른바 ‘허준 신드롬’이다. 과거에도 허준을 다룬 드라마가 많이 있었지만 이번 ‘허준’은 뭔가 다르다.그 진원지는 바로 작가 최완규(36)다.드라마의 세밀한 대사와 현실성 높은 캐릭터 설정은 작가의 내면과 외양이 날카로울 것이라는 예단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막상 대면한 그는 예상을 깬다. 농투성이를 연상시키는 큰 덩치에 턱수염까지 길렀다. 일주일에 3-4일씩 날을 샌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담배 3-4갑을 소진해야 하루 작업이 끝난다고 한다. 한없이 자고 싶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고 했다.
왜 그는 8년째 불면의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 “달리 먹고 살 게 없어서” 대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 말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함이 깃들어있다.
20대 젊은 시절 가위눌림으로 다가왔던 소설가의 꿈. 하지만 쓰지 못했다. 인천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두고 순전히 한 끼를 때우기 위해 10년 세월 공단을 전전했다. 무심결에 텔레비전 자막에서 극본 공모를 보았다. 극본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른 채 써냈던 극본이 당선. 이것이 작가 최완규의 시지프스 고통의 시작이었다.
대선배인 김운경의 말처럼 그는 운이 억세게 좋은 사나이인지 모른다. 10년정도 해야 쓸 수 있는 장기 드라마를 단막극 두 개 쓰고 집필하게 됐으니. 1994년 젊은 의사들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종합병원’의 보조작가였다. 메인 작가의 집필 거부로 쓰게 된 ‘종합병원’. 그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들과 6개월을 먹고 자면서 의사와 환자를 연구했다. 여기서 작가 최완규를 규정할 수 있는 단어 하나가 나온다. ‘현실성’. 그는 철저히 취재한 뒤 극본을 쓰는 스타일이다.
사회성 짙은 ‘그들만의 포응’ ‘애드버킷’, 정치성 강한 ‘야망의 전설’, 서정성 진한 ‘간이역’ 등 그가 썼던 드라마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지만 작품들을 관통하는 한가지 공통점은 현실성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사건은 매우 개연성 높은 것들이다. 그래서 시청자는 그의 드라마를 보면서 극중 인물과 쉽게 동화하며 몰입할 수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남한테 욕 안먹는 이야기꾼이고 싶고 말이 안되는 드라마만큼은 쓰기 싫다”고 말한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탄다. 조금 칭찬하면 얼굴이 금세 빨개지고 고개를 숙인다. 동료 작가들은 그를 ‘내출형의 인간’이라고 부른다. 남에게 생채기 내기보다는 자기가 상처받는 스타일이기에. “마감 시간이 되면 숨이 막혀온다”는 그이지만 인터뷰가 두시간 이상 계속돼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한다. 늘 그런 식이다.
작가 초년병 때는 글을 고치라는 연출자와 싸우느라 힘들었고 이제는 삶의 진정성보다는 가벼운 것만을 추구하는 방송사의 태도와 시청률의 마술에 힘들어 한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먼저 함께 작업하는 200여명의 스태프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다”. 4%가 나왔던 ‘야망의 전설’의 방송 초기 그는 서울을 도망가고 싶어 짐을 싼 적도 있다.
회당 400만원의 고료를 받는 ‘역량있는 작가’라는 평은 그의 많은 부분을 앗아갔고 희생을 강요했다. 결혼 여부를 묻자, 말대신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 “결혼했는데 지금 혼자다…” 고수입과 명예를 좇아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이 침묵의 의미를 한번쯤 짚어 볼 대목이다.
끊임없이 담배를 물고 있는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금림 김정수선생님처럼 자기 색깔을 갖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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