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진통제 하면 떠오르는 약이 있다. 바로 ‘타이레놀’이다. 타이레놀은 아스피린보다 훨씬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성인은 물론 어린이의 해열진통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아기를 키우는 가정에선 대부분 타이레놀을 어린이 상비약으로 갖춰놓고 있다. 신생아의 경우 연간 3-8회 열감기에 걸리는데, 열이 높고 보챌 때는 타이레놀 시럽을 먹이는 게 일반적이다.그런데 최근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하면 간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신시내티대 소아과 제임스 하이비 교수는 ‘현대소아학’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타이레놀의 적정 투여량은 안전성이 인정되지만, 무심코 자주 과다 복용하거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포함된 해열제와 조제 감기약을 함께 복용했을 경우엔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이비 박사는 “영·유아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유해용량은 표기된 권장치의 2배가 채 안된다”며 “그런데도 많은 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정확한 체중을 몰라 복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열이 날 때마다 대충대충 먹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도 70% 가량은 지시된 복용량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나 체중에 관계 없이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하면 간에 심각한 타격을 줘 간 장애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타이레놀이 인체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보고는 이 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영국에선 1966년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하면 간이 괴사(壞死)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미국서도 1996년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간부전(肝不全)으로 사망한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빚었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선진국에서 많이 발생하는 간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게보린, 펜잘, 사리돈 등 시중에서 판매되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약품은 100여종이 넘는다. 어린이는 체중 1㎏에 140㎎을 초과하면 급성독성을, 4g 이상 복용하면 간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하이비 박사는 “타이레놀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어린이의 나이를 불문하고 물약으로 된 것만 먹여야 한다”며 “지침대로 복용하되 체중과 나이를 감안, 용량을 어겨서는 안되며 24시간 이내에 5회 이상 투여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부모들이 체열(體熱)을 몸이 병균을 통제하고 있는 과정으로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체온이 섭씨 38.8도를 넘지 않는 한 타이레놀을 먹이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정훈소아과 하원장은 “감기약을 조제할 경우엔 흔히 해열제가 들어간다”며 “감기약을 먹이면서 해열제를 투여하거나 해열제를 먹이면서 좌약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엔 복용량이 두 배가 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간염이 있거나 간기능 수치가 올라간 어린이도 복용량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현재로선 타이레놀이 가장 안전한 해열제이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을 독감이나 수두, 기타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린 어린이에게 투여할 경우 치명적인 라이증후군이 생길 수 있지만, 아세트아미노펜은 라이증후군의 발병률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란병원 소아과 김효신과장은 “독감이나 수두를 앓을 때 아스피린을 쓰면 신장장애나 알레르기 반응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지만, 타이레놀은 이런 부작용이 거의 없다”며 “복용량이 체중 1㎏에 0.1㎖를 넘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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