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리처드’로 불러주세요”홍콩의 신흥 인터넷 재벌 리처드 리(본명 리차카이·李澤楷·34)는 지난달 29일 홍콩텔레콤(HKT)을 극적으로 인수한후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인수전 성공을 세계 10대 부호인 아버지 리카싱(李嘉誠) 장강실업 회장의 ‘후광(後光)’ 때문으로 보는 세인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선임장관(전 총리) 가문과의 대결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HKT 인수전은 신생 인터넷 기업가의 패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한판의 역전극이었다. 미혼의 리처드가 불과 10개월전에 만든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PCCW)는 초반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고늘어져 ‘언론재벌’루퍼드 머독의 현금 지원을 받은 싱가포르 텔레콤(SingTel)을 따돌렸다.
자존심을 구긴 리 전총리도 “홍콩 젊은이의 도전정신과 우수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리처드를 칭찬했다. 리처드는 이제 자산규모 6,000억 홍콩달러(약 90조원)의 PCCW-HKT의 경영자로 아버지에 이어 홍콩 제2의 부자이다. 이 회사는 위성과 케이블로 전 아시아를 묶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다는 그의 야심을 실현시킬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캐다나의 투자은행인 ‘고든 캐피탈’에서 기업 인수합병(M&A) 기술을 연마한 그는 24세때인 1990년 아버지로부터 1억2,500만달러를 받아 아시아 최초의 위성TV인 스타TV를 설립했다. 그리고 불과 5년뒤인 1995년 이 회사를 머독에게 투자금의 8배인 9억5,000만달러에 팔았다. 형 빅토르 리(38)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차남인 리처드는 스타TV 매각 대금으로 보험과 부동산업을 주종으로 하는 태평양센추리그룹(PCG)을 설립, 분가(分家)하며 본격적인 기업확정에 나섰다. 지난해 홍콩의 첨단 정보통신단지인 ‘사이버 포트’ 건설 프로젝트(17억달러 상당)를 수주하며 일약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타임지로부터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리카싱의 아들’이길 거부한다. 홍콩의 한 실업가의 표현대로 “리처드는 아버지가 알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돌적인 추진력과 사업가로서의 감각은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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