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남이 부러워할 정도의 좋은 체격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좋은 체격 덕분에 그의 드라이버샷은 보통 250야드를 넘었고 때때로 300야드에 육박하기도 했다. 장타자가 그렇듯 그의 문제점은 OB가 잦고 페어웨이 안착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동반자들은 그의 장쾌한 드라이버샷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에 걸맞지 않은 나쁜 스코어에 안도하는 셈이었다.그도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간혹 파5홀에서 투온시키거나 짧은 파4홀에서 원온을 시켜 이글이나 버디를 건지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이글을 기록한 날은 영낙없이 최악의 스코어를 낸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글을 하면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가슴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일종의 황홀경에 빠진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태에서 오너가 된 그는 뛰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티박스에 올라서는데 결과는 미스샷으로 나타났다.
그는 티박스에 올라갈 때 “버디나 이글을 했으니 틀림없이 값을 치르겠지”하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는데 이러고 나면 어김없이 미스샷을 내고 만다는 것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C의 케이스는 원래 장쾌한 샷이라 실수할 확률이 높은 탓도 있지만 실수를 지레 걱정하는 자기예언적인 발언을 자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기막힌 샷 뒤의 실수’가 루틴으로 굳어버린 경우다.
C는 이런 고질병을 우연한 기회에 고칠 수 있었다. 싱글골퍼와 라운딩을 가진 뒤 조언을 구했더니 “라운드 중엔 샷을 잊어버리고 입에는 납추를 달고 가슴엔 맷돌을 얹어놓으라”고 한 마디 말했다. 함부로 부정적인 발언을 하지 말고 가슴이 흥분에 들뜨지 않도록 가라앉히라는 뜻이었다. 이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의도적으로 말을 삼가고 심호흡을 해보니 기대 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가다 비명에 간 지난해 US오픈 우승자 페인 스투어트는 마지막 우승퍼팅을 성공하고 나서야 기쁨을 터뜨리며 포효했다. 세계랭킹 1위인 타이거 우즈는 프로 입문 초기 버디펏을 성공시킬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야생동물처럼 포효하는 장면을 자주 보였으나 최근에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며 평상심을 흐트리지 않는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마음 속의 납추와 맷돌은 새봄 흥분에 들떠 필드를 찾은 골퍼에게 한층 묘미있는 라운딩을 선물해줄 것이다.
/방민준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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