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몇달만에 잘할 수 있다?”영어는 없고 영어공부법만이 난무하고 있다. 수개월내에 영어를 모국어로 만들어준다는 책이 서점가를 뒤덮는가 하면, 수많은 학원들이 ‘단기간 영어정복법’을 선전하면서 직장인과 취업 준비생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영어수업, 영어취직, 영어승진 등 유행처럼 발표되는 당국과 기업의 조치들이 ‘인스턴트 영어’의 환상을 심고 제대로된 영어교육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서점가를 휩쓰는 영어학습 방법론 : 최근 서울시내 대형서점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는‘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는 역설적인 제목. 이제까지 배워왔던 학교영어는 잊어버리라며 저자가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를 가르치는 이 책은 지난해 7월 출판돼 벌써 35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영어의 습관화’를 모토로 내건 저자는 “책에 나온 방법을 무조건 믿고 실천하면 6개월 내에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테이프 하나만 꾸준히 듣고 받아쓰면 귀가 뚫린다’는 등 단순한 ‘비법’이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밖에도 서점가에선‘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학교영어 싫은 사람 모두 모여라’ ‘미국영어 발음 무작정 따라하기’등 영어학습법 관련 서적 100여종이 앞자리를 다투고 있다.
■이리저리 떠도는 영어학원족 : 서울 K대 출신의 한모(27)씨. 군제대후 3년간 취업을 준비해온 한씨의 하루는 영어로 시작해 영어로 끝난다. 오전6시에 기상해 한시간동안 라디오로 영어회화 강좌를 청취한뒤 영어 학원 두 곳을 오가며 오전을 보낸다.
밤12시까지 영어공부, 아예 잘때도 CNN방송을 켜놓고 잔다. 하지만 한씨의 토익점수는 아직 700점대에 머물고 회화는 거의 안된다. 시중에 나온 영어 공부법도 다 봤다는 한씨는 “학원에서 상담할때는 금방이라도 영어를 잘할 수 있을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학원관계자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서만 새벽에 영어학원을 찾는 수강인구가 2만여명이다. 특히 한씨처럼 토플은 A학원, 청취는 B학원식으로 두군데 이상의 학원에서 한꺼번에 수강하는 사람들이 많다.
C학원 관계자는“어느 학원의 독특한 방법이 소문 나면 수강생이 우르르 몰려들지만, 한곳에서 석달이상을 수강하는 사람은 30%도 안된다”고 말했다.
■문제점 :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정연일(鄭然日)교수는 “‘6개월, 1년만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는 영어학습법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교수는 “자신들이 익힌 특이한 방법을 왕도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특히 영어학습법의 저자들이 서로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비방하는 내용도 많아, 학생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양대 이영자(李英子·영어교육과)교수는 “‘영어가 안되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영어에 대한 조급증이 확산되고 있다” 면서 “이를 노린 상술이 성행하는 것이나, 잘못된 주입식 학교교육이나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외국어 교육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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