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벌러 왔다고요? 천만에요"정숭호가 만난 사람-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그린베레 출신의 공격형 경영인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IMF사태의 한 상징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외국인이 어느 날 느닷없이 한국 시중은행의 최고경영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IMF사태를 겪기 전 문민정부가 ‘세계화’를 국가목표로 들고 나오면서 ‘세계화를 앞당기기 위해 외국인이 우리나라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말이 무성했지만 정작 우리 경제계에 외국인 CEO(최고경영자)가 출현하게 된 것은 IMF사태로 한국 경제의 부실상이 드러난 결과였다. 그런 생각을 바탕에 깔고 대표적 부실 금융기관인 제일은행의 새로운 조타수 호리에 행장을 만났다. 과연 그가 구조조정이라는 격풍을 맞고 있는 한국 금융산업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서였다.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크게 올 겁니다’
그의 제일은행장 취임에 대한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소위 ‘선진금융기법’을 도입, 우리 금융산업발전을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이윤극대화 논리에 따라 돈만 벌면 언제든 다시 철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에게 취임후 그동안 제일은행의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바꿀거냐고 먼저 물었다. 금융계의 큰 관심속에 취임했지만 그 이후 그럴만한 뉴스는 별로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월21일 취임했다. 그러니 벌써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그동안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추구해왔다. 대화에서 나는 직원들에게 특히 고객이 왕이다, 고객우선으로 영업을 하자, 더 질 높은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찾는데 노력하자고 주문했다. 나는 또 은행의 제일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많은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밖으로는 고객중심영업, 안으로는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통해 제일은행을 천천히, 그러나 크게 바꿀거라는 말이었다.
‘돈만 벌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하와이대학 졸업후 금융업에 투신한 일본계 3세 미국인이다. 하와이의 날씨와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스그룹(그는 뉴브리지스그룹에 의해 제일은행장에 선임됐다)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이윤만 추구하기위해서가 아니냐고 물었다. ‘벌써부터 뉴브리지스는 제일은행 주식이 적당히 오르면 주식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날 것이다는 소문이 있다’는 증권가 루머까지 끼워 던져본 이 질문은 결과적으로 우문이 되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최초로 외국계 은행을 경영하게 된 것을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 금융시장에 진입함으로써 뭔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제일은행이 한국에서 이윤만 챙기려 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없는 얘기다. 물론 은행업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주주들에게 보답을 해야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고객에게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은행은 시장점유율을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호리에 행장을 만날 거라고 했더니 시중은행에 차장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꼭 물어봐달라고 주문한 질문이 있었다. 미국계인 제일은행이 한국 소매금융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외국에서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 경쟁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해줄 거로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있을 법한 걱정이라고 생각되었다.
“천만의 말이다. 시장을 석권한다는 논리는 은행업에는 맞지 않는다. 은행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마켓쉐어를 따지는 곳이 아니다. 제일은행은 싼 대출원인 동시에 엄격하고 합리적인 신용관리를 통해 가장 경쟁력있는 은행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소매금융도 경제발전에 기여합니다’
그는 취임직후 ‘대기업금융 대신 소매금융에 치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방침은 곧바로 경쟁은행들에게 제일은행의 가장 기본적 경영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많은 국내 금융인들은 이 방침을 산업을 선도해야 할 은행의 역할을 소홀히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곧바로 답변을 쏟아냈다.
“은행이 경제를 선도해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소매금융에 치중한다 해서 그런 역할은 소홀히 할 것이라는 주장은 틀린다. 은행은 처음에는 제조업에 대한 금융으로 산업발전을 지원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소비산업이 번창하게 되면 소매금융을 뒷받침해야 경제가 발전한다. 미국이 좋은 예다. 미국은 지금 GDP의 3분의2가 소비산업분야에서 창출되고 있다. 미국시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금융기관들도 집중적으로 소비자 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본다.”
그의 기본전략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시중은행중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의 경영이 가장 안정돼있는 것도 대기업금융보다는 가계대출 주택대출 등 소매금융이 강하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제일은행 경영정상화가 시급한 그로서는 소매금융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모든 시중은행들이 같은 이유로 소매금융에만 치중하면 소위 은행의 사회적 역할은 누가 하게 될 것인가.
그는 이런 시비가 예상됐다는 듯 “소매금융을 늘린다는 것은 대기업금융에 편중된 은행영업의 균형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지 대기업금융을 아예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은행은 그 분야에 불경기가 닥치면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텍사스의 은행들은 석유경기가 좋아지자 석유회사를 주고객으로 영업방침을 전환했다. 그러다 텍사스의 석유산업이 불경기를 맞게되자 그런 은행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에 처했다.” 어느 자리에선가 대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의 균형에 대해 말하면 그가 예로 든 사실이다.
‘필요한 규제와 간섭은 받아들여야 겠지요’
호리에 행장의 연봉은 30억원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중은행장들보다 몇십배 많다. ‘상식’보다 엄청나게 많은 그의 연봉은 제일은행이 외국계은행이어서 정부 간섭이나 규제를 덜 받기 때문이라는 풀이를 낳았다. 국내 은행장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연봉에 제약이 있지만 그에게는 그런 제약이 있을리 없다. 이때문에 제일은행과의 경쟁은 불공정할 거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는 이에 대해 직답은 피하면서 “영국은행과 일한 경험이 있는데 영국에서도 규제는 엄격하지만 예금을 보호에 한정돼 있다. 그런 규제는 우리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과거 한국에는 지나치게 많은 규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연봉에 대해서도 “은행장 급여에 대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분출되게 하려면 기업가 정신을 키워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부여를 해야 할 거다. 야구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투수와 타자를 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을 데려오는데 얼마 이상은 안된다고 지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봉에 대해서는 규정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서 받던 수준과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공격형 경영인'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공격형 경영인’이다.
올해 53세인 그는 하와이대학을 졸업하고 ‘어소시에이츠 퍼스트 캐피털’이라는 금융회사에 입사, 30여년간 소매금융 및 국제금융업무를 맡다가 수석 부사장까지 지냈다. 어소시에이츠 캐피털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금융회사중 최대 규모로 호리에행장은 1996년 이 회사 해외금융부분을 총괄하기 시작, 3년만에 거래국가를 5개국에서 13개국으로, 자산규모는 4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에 앞서 1970-80년대에는 일본 시장진출 책임을 맡아 각종 규제를 극복하고 AIC.DIC 파이낸스사를 설립, 일본 최대의 외국계 소비자금융기관으로 키웠다.
“나는 언제나 적절한 때에 적당한 장소에 있으려고 노력해왔다”
그가 스스로 밝힌 성공의 비결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누가 나의 경쟁자인가를 살피며 살아왔다. 단순히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의 상사나 부하, 또는 동료를 막론하고 누구로 부터 배워야 하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배울만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부터는 그걸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그리고는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3세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당시만 해도 백인중심이었을 미국 금융계에 입문, 마침내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호리에 행장은 늘 도전하는 사람이다.
미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에 지원,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나 마흔이 훨씬 넘어 시작한 마라톤을 여러차례 완주한 경험(최고기록은 4시간 30분)을 자랑하는데서도 그의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다. 한국에 온 것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어느 자리에서 그는 “나는 CEO가 되고 싶었다. 퍼스트 어소시에이츠에서도 불만은 없었지만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갑내기가 CEO인 그곳에서 계속 2인자로 있기는 싫었다. 그래서 70년 역사의 제일은행장 자리가 제의되자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결코 봉급이 많아서가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또 군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집사람과 결혼 하기전 ‘당신은 내 인생에서 직장과 군대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하다’고 말하고 동의를 받았다. 직업은 보다 나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군대는 거기서 받은 리더쉽 훈련이 직장에서도 커다란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린베레에서는 특정지역에 투입돼 현지인들을 훈련시키는 임무도 수행했는데 그때 배운 기술을 지금도 써 먹는다. 한국에서도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세븐-일레븐 가이’ 그는 유머가 풍부하다.
하루 몇시간 일하는가, 요즘 무슨 책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세븐 일레븐 가이(GUY)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퇴근하니 그렇게 불러야 하지 않는가”고 말했다. “요즘 읽는 책은, 글쎄, ‘한국어 제대로 말하는 법’이라는 거다”고 눙치면서 “사실은 패튼장군이 쓴 리더쉽에 관한 페이퍼 백을 일고 있다”고 고쳐 말했다.
그런 유머감각과 지속적인 리더쉽 공부덕인지 제일은행 직원가운데 “호탕한 성격에 친화력이 있다. 함께 있으면 편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직원들과 여러차례 소주잔을 나눈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기자에게도 “나중에 소주나 한 잔하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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