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그러나 늘 그렇듯 노동현장에서의 봄은 투쟁의 계절이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탈출한 후 처음 맞는 올 봄 노동계는 지난 2년동안의 「희생」을 보상받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총선 특수」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서 올 춘투는 과거 어느 때보다 격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뉴밀레니엄 첫 봄에도 노동계와 재계는 평행선을 달릴 것인가. 재계를 대표하는 경총과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 노와 사의 정책을 세우고 이론을 내놓는 두 단체의 비중있는 책임자들이 만나 전초전을 벌였다._ 아무래도 임금인상 문제가 올해 춘투의 핵심쟁점이 되겠지요.
이수호= 노동자들은 IMF관리체제 이후 2년간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등으로 희생만 했습니다.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추세입니다. 최소한 지난 2년간 노동자의 희생부분을 올해 임금에 반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남홍= 문제는 기업의 지불능력입니다. 경기가 풀렸다고 하나 양극화현상이 뚜렷합니다. 현재에도 상장회사의 24%가 화의나 법정관리 상태입니다. 일률적으로 임금을 올려주기는 어렵습니다. 사용자가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로 막상 올려줘도 이듬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그같은 임금인상은 아무에게도 득이 안됩니다. 경쟁력도 살리고 실업률도 줄이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수호= 그렇다고 해도 경총이 제시한 가이드라인 5.4%는 너무 낮습니다. 이는 지난 2년간 임금삭감분 5%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같은 임금삭감분과 경제성장률 7%, 물가상승률 3% 등을 반영해서 15.2%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조남홍= 능력을 넘어 마지못해 15.2% 올려준다고 합시다. 그러면 고비용구조로 가지 않겠습니까. 알다시피 IMF관리체제도 고비용저효율에 의해 생겼습니다. 이런 고난을 겪고나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이수호= IMF관리체제의 원인을 고비용저효율로 보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외환위기는 방만한 기업운영, 재벌중심의 문어발식 투자, 이에 편승한 초국적자본으로 닥쳤던 금융위기입니다.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은 게 큰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남홍= 물론 그동안 근로자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업도 희생했고 은행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국민 모두가 희생한 것이지요. 이분법적인 사고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생산성이 높아져 돈을 벌면 당연히 혜택을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하죠. 그러나 지금도 미래를 보고 투자하느라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무조건 참으라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수호= 중소기업 얘기가 나와 마음이 아프지만 IMF이후 재벌은 더 비대해지고 경제력이 집중됐습니다. 이같은 양극화는 잘못된 현상입니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사업도 잘되고 그래서 노동자도 질높은 삶을 누렸으면 합니다.
- 노동시간 단축도 현안이지요.
이수호= 주 40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맞물립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에서도 연간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조남홍= 근로시간단축을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조금만 일해도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러나 지금 당장 해야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현재 주 40시간 근무를 도입한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이상인 국가입니다. 우리로서는 시기상조인 셈이죠. 또한 주당 근로시간을 현재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면 15%의 임금인상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업주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사실 지금 개별기업에서는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이나 42시간인 곳도 많습니다. 이 문제는 개별사업장의 형편에 따라 단협에서 해결될 문제인 것같습니다.
이수호= 외국에서는 노사자율이 최대한 보장되고 있기 때문에 법정근로시간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껏 노사문제를 법이나 규정으로 해결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법정근로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곳도 많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적어도 법으로 정해야 거기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남홍= 앞으로 기업은 적은 노동력에 생산성이 높은 장치산업에 투자하게 될 겁니다. 또 지식기반사회에 맞춰 지식노동자와 비지식노동자의 임금이 차이가 커질 것입니다. 많은 경영자들은 그래서 근로자 교육에 투자해서 지식근로자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는 실업을 우려해 장치산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_ 이 마당에 재계의 정치참여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지요.
이수호= 재계는 정경유착을 통해 정치에 영향력을 과도하게 행사했고 심지어 정치를 좌지우지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IMF도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재계가 좀 더 신중했으면 합니다.
조남홍= 노동계도 올해부터 정치활동을 하게 되는데 저는 그것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도권 안과 밖에서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죠. 재계의 정치활동이 눈총을 받는 것도 잘 압니다. 사실 재계의 정치활동은 노사문제와 관련,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분석해서 그 내용을 내부자료로 쓰겠다는 게 기본방향입니다. 즉 입법과정에서 특정사안에 대해 어떤 의원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회원사에게 알려주는 것이죠.
시민단체들의의 낙천낙선운동과 다릅니다. 우리가 평가하면 4년후 선거에서 국민이 알아서 평가할 것입니다. 리모트콘트롤하겠다는 뜻이지요. 기업을 많이 나무라는데 사실 억울한 측면이 많습니다. 정주영씨가 5공청문회때 『장사는 시류에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기업을 키우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죠. 정치개혁이 앞서야 합니다. 그속에 기업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잘못도 했죠. 그러나 기업가에 바가지 씌우는 것은 심합니다. 기업이 없으면 나라가 안됩니다. 기업가를 존중하게 하는 풍토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정신이 죽으면 안됩니다.
이수호= 다른 힘을 빌지 않고 건강하고 튼튼한 기업경영이 이뤄진다면 존경받는 전문기업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청소년중에는 장래희망이 경영인인 사람도 많습니다.
조남홍= 덧붙여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금융관행도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합니다. 전당포마냥 담보만 요구하면 안됩니다. 사업성이 있는 기업에는 신용으로 돈을 빌려줘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기업도 신나게 일하게 됩니다.
_ 이번 총선에 노동계의 관심이 크지요.
이수호= 총선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세제개혁, 비정규직 노동자의 제도적 보호, 공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의 고용안정 등을 정치 쟁점화할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안받아들여지면 5월에는 총파업도 불사할 겁니다.
조남홍= 노동계가 그같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와 사가 해결해야죠. 노동계는 사회 정의를 앞세우지만 이를 너무 좇다보면 사회 효율이 문제가 됩니다.
_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문제는 아직 해결 안됐죠.
이수호= 노사정위원회 합의안이 지난해 마련돼 국무회의까지 통과된 상태입니다. 2002년부터 허용될 것으로 봅니다.
조남홍= 지난해 노정과 합의는 됐지만 노사와는 합의가 안된 문제입니다. 재계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무노동무임금이라는 대원칙이 완전히 깨지기 때문이죠. 2002년에는 복수노조도 허용되기때문에 더더욱 안됩니다. 일본의 경우 76%가 전임자가 없습니다. 유럽 여러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시간공제도(Time-off)를 대안으로 봅니다. 노사가 1년에 일정시간을 계약해 노조가 그 시간안에서 조합원들을 위해 한 일을 보고서로 사측에 낼 경우 그 내용을 확인해 돈을 지급하는 방안입니다. 대다수 중소기업인들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재계가 정치참여를 하게 된 것도 사실 이 문제때문입니다.
이수호= 글쎄요. 노조전임자를 두는 것이 현장 전체를 잘 굴러가게 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 독특한 노사문화 현실을 감안, 양쪽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원칙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조남홍= IMF위기에서 일단 탈출됐다고 하나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노사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공정한 심판자 입장에서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면 노사화합의 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수호= 우선 IMF관리체제 동안 고용불안 등으로 희생한 노동자의 아픔을 사용자와 국민들이 우선 알아줬으면 합니다. 노동계는 IMF위기가 정말 건전한 모습으로 탈출됐는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해져 노동자의 삶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여러가지 관계 설정을 분명히 하고 노동계의 입장을 적극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받아줬으면 합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우리도 경제발전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남홍
1936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특채로 관계에 입문, 주이란대사관 상무관, 상공부 공보관,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장, 주EC대표부 상무관을 지냈다. 87년 한국무역협회로 자리를 옮겨 워싱턴사무소장(상무)과 전무이사를 지냈고 94년부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다. 96년 국제노동기구(ILO)이사회 이사로 피임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수호
194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국문학과를 졸업, 경북 제동중 서울 신일중과 신일고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서울YMCA교사회 회장, 서울교사협의회 회장, 전국교사협의회 부회장, 전교조 사무처장·서울지부장·부위원장, 서울시교육위원, 국민연합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다. 89년 전교조 사무처장때 해직됐다가 98년 복직했으며 지난해 9월부터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임종명기자
lj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