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13 총선 총력체제로 돌입하면서 겉으로는 지역주의 타파를 구호로 내걸고도 실제로는 선거 승리를 위해 이를 이용하는 선거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지역감정을 격화시키고 있다.일부 정치지도자들은 텃밭 지역에서 직·간접적인 화법을 동원해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조장,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해야 한다는 국민여망을 정면으로 짓밟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에 따라 새천년 들어 처음 실시되는 총선이 새로운 정치 리더십 창출과 지역감정 조장 등 구습의 청산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에 대해 투표로 국민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의 2일 발언은 노회한 지역주의 조장 수법으로 지역주의 심화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15대 대선때 「충청도 핫바지」론을 퍼뜨려 충청 지역감정을 자극했던 JP가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으로부터 충청 맹주 자리를 위협받게 되자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일으켜 방어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도 표면상 지역주의 타파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뜯어보면 지역주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인제 선대위원장이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고향인 충남 논산·금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충청지역에 기반을 구축한 뒤 대권 도전에 나서려는 지역주의적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정책대결보다는 「반DJ」에 선거전략의 초점을 맞춰 지역주의와 맞물려 있는 영남권의 반DJ 정서를 집중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것도 영남 텃밭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의 조장전략이라는 비판이다.
한나라당이 3일 호남 출신이 권력기관의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자료를 배포한 것도 진지한 문제 제기라기 보다 논란 상황에 편승해 실상을 과장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처방식도 지역주의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조용하게 지역주의 해소에 접근하기보다는 공개석상에서 다분히 수사적인 지역주의 해소를 강조해 오히려 상대지역의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강대 손호철(정치학)교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권력 극대화를 위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다시 건드리고 있다』면서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총선시민연대 이태호 정책기획국장은 『정치지도자들이 더이상 국민을 지역감정의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며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한 정치인은 낙선운동대상에 포함시켜 반드시 심판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계성기자
wkslee@hk.co.kr
■4·13 총선 초반전인데도 벌써부터 정치권의 지역감정 악용 사례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여야 4당은 「텃밭」에서 몰표와 의석 「싹쓸이」를 위해 지역주의 부추기기에 앞장서는 등 낡은 선거전략을 그대로 쓰고 있다.
최근 지역주의 뇌관을 직접 건드린 사람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다. JP는 2일 충남 부여·논산에서 열린 자민련 행사에 참석,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주의 해소 발언과 관련, 『영·호남 지역감정은 김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출마한 1971년부터 생긴 것』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그는 『자민련이 결정적으로 많은 의석을 얻어야 동서화해를 시킬 수 있다』며 충청권 결집을 호소했다. JP는 1987년 대선과 관련, 『영남출신 후보들이 호남에 갔을 때 돌멩이가 날아들었지만 호남 사람이 영남에 갔을 때는 돌멩이가 없었다』고 말하며 지역 갈등을 부추겼는데 「영남에선 돌멩이가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3일 대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1987년 대선 때 김대통령이 4자필승론을 들고 나와 지역주의가 심화했다』고 주장해 지역주의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한나라당은 또 「DJ 정권 2년 호남편중인사를 고발한다」는 책자를 배포해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무기로 활용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민주당 지도부도 호남에서 지역주의에 호소했다. 민주당 한화갑 호남선대위원장도 2일 광주를 방문, 『후보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김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지를 부탁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전원 당선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서영훈 대표도 이날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의 소외감은 알지만 대통령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지지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민국당의 김광일 최고위원도 최근 TV토론에 출연, 「호남당이 있으니까 영남당도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이 뭐가 나쁘냐」 등의 취지로 지역주의 발언을 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의 김대중 대통령 비난발언은 선거에서의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그 원초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역사논쟁」을 촉발시켰다.
정부수립 이후의 역대 선거과정과 선거결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표심의 영·호남 분리현상이 뚜렷해진 것은 1971년 7대 대통령선거 때부터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경남·북에서 각각 66.9%와 75.6%를 얻어 32.1%와 23.3%를 얻는 데 그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를 2-3배 앞질렀다. 전남·북에서는 반대로 김후보가 각각 62.8%와 61.5%를 획득, 34.4%와 35.5%를 얻은 박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문제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느냐다. 선거결과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지역감정을 조장, 선거전에 이용하려는 조짐은 공화당 박정희후보와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맞붙은 63년 제5대 대선 때에도 나타났다. 당시 박후보의 찬조연사로 나선 이효상(6,7대 국회의장)씨는 대구에서 『이 고장은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지만 임금을 배출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신라의 자랑스런 후예인 박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자』며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그래도 이때는 선거결과가 동서로 쪼개지지는 않았고 여당인 공화당이 충청이남에서 우세를 점한 「남북현상」과 「여촌야도현상」이 오히려 두드러졌다. 한달 뒤 치러진 6대 총선에서도 공화당과 민정당은 지역별로 고른 득표를 했다.
69년 박정희대통령이 삼선개헌 국민투표라는 무리수를 감행한 뒤 치러진 71년 대선 때에는 두 후보의 출신지가 대립,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본격화했다. 역시 이효상씨 등이 다시 나서 『문둥이가 문둥이 안찍으면 어쩔끼고』 『박대통령은 경상도대통령이다』 『이쪽에서 몰표를 안주면 저쪽에서 나올 몰표를 당해낼 수 없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했고 김대중후보 진영에선 이같은 발언들을 격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유신 및 군사정권의 어두운 터널을 거쳐 87년에 치러진 대선에서는 야권분열이 지역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와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는 영남을 다시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으로 갈랐고, 민주당과 갈라선 평민당의 김대중후보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후보는 각각 호남 및 충청지역의 맹주를 자처했다.
71년 대선 이후 누적된 인사 및 개발정책에서의 지역편중 시비도 지역감정 심화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87년 선거에서는 「호남푸대접」 「충청무대접」등 야당에 의한 지역감정 조장도 만만치 않았다. 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 때 나온 김대중총재의 「지역등권론」, 김종필총재의 「충청도핫바지론」도 지역정서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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