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정숙씨가 1일 반세기에 걸친 영화 인생을 마치고 영면했다.마지막 특별출연한 영화는 96년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였다. 시골 상가에서 흔히 만나는 노부인 역이었으나, 평범한 가운데도 기품과 분위기가 남달라 보였다. 영화가 죽음과 장례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리지만, 젊은 관객 중에 노배우를 눈여겨 본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 그는 먼 시대의 여배우였다. 큰 눈에 우수와 정열이 가득했던 그의 전성시대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작품이 '오발탄' (감독 유현목)과 '만추' (감독 이만희)다. 그의 지적인 이미지와 영화의 문학적 분위기가 맞아 명작이 탄생한 셈이다. 전후의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상을 리얼리즘으로 묘사한 '오발탄'은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만추'는 그 뒤 몇차례나 리메이크되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 '오발탄'은 지금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도 찾을 수가 없고, 그가 주연한 '만추'는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기록에만 존재하는 명작이 돼 버렸다. 마침 한국영상자료원은 '문정숙 회고전' (6-10일 예술의 전당 시사실)을 열 계획이었다. 회고전은 개최 직전에 주인공을 잃어 추모전이 되었다. 그의 집안은 영화에 공이 크다. 고 이만희 감독은 한때 그의 동반자였고, 영화제작자 장일(작고)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촬영감독이다. 언니 문정복씨는 북한의 공훈배우가 되었으며, 언니의 아들은 배우 양택조씨다.
■ 문정숙씨의 활동이 만개했던 60년대에 한국영화도 전성기를 누렸다. 그 후 침체일로를 걷던 한국영화는 근년 들어 빠른 속도로 저력을 회복해 가고 있다. 영상매체인 TV는 영화계의 스타가 타계했을때, 그들을 기리는 작업에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의적절하게 고인의 대표작을 소개해서 힘들게 걸어간 개척의 자취를 되새겨야 한다. 문정숙씨의 '오발탄'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랑스런 '쉬리'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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