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국학발전에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1978년 설립 이후, 심하게 말하면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권의 이데올로그」라는 비난을, 또는 의혹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한상진(韓相震·55·사진) 원장을 만나 정문연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뉴 밀레니엄(새 천년)입니다. 21세기, 정문연은 어디로 어떻게 갈 겁니까.
『한국학 연구·교육의 세계적 중심센터로 도약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국학 연구의 심화와 한국학의 세계화를 두 날개로 펴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학연구를 외국을 포함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심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세계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세계에 널리 알려야지요』
-구체적인 방법은 뭡니까.
『고문서 수집·연구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국내 최고권위자인 박병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초빙교수로 모셔 올해부터 「고문서관리학」을 석·박사과정으로 설치했습니다. 또 영어강의를 늘리고 외국인교수도 많이 초빙할 계획입니다. 우선 파리 유네스코 본부 철학국장으로 「아시아적 가치와 보편윤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김여수(전 서울대 교수) 박사를 초빙교수로 모셨습니다. 또 하버드대 등과의 교환·교류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지요』
-올해 예산 95억원중 상당부분이 인건비이던데 그런 사업들이 가능한가요.
『예산중 65억원 정도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고맙지요. 그러나 정말 턱없이 부족합니다. 재작년부터 구조조정도 많이 했는데…』
-먹고 살기 빠듯한 국민들이 왜 정문연을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지요.
『정문연은 국민 혈세로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국민에 봉사하고 국가발전에 공헌해야 합니다. 정문연은 전통을 연구해 우리 사회 새 발전모델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도약을 위한 정신문화의 요람이라고 할까요. 통치이데올로기 제공이나 정부 홍보 같은 것은 진짜 1%도 없습니다』
-새 발전모델의 토대를 어떻게 만든다는 것인지 설명해주시지요.
『개발독재로 일컬어지는 「박정희식 모델」은 분명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컸지요. IMF까지 겪은 마당에 새 모델이 정말 필요합니다. 선진국도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해서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그 모델의 규범적 토대가 뭐냐? 새 모델도 외국에서 가져올 수 있느냐?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전통으로부터 토대를 만들어 끌어다 써야 합니다』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를 전공한 사회학자로서 우리 전통에서 정말 그런 토대를 찾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지난회 이우성 민족문화추진회장 인터뷰에서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도 유럽의 국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을 의미깊게 읽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91∼92년부터 모더니즘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통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에 대한 재해석은 언제나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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