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불가능한가. 리메이크 영화는 만들어지는 이유에 따라 스타일도 달리한다. 구스반 산트 감독은 히치콕에 대한 헌사와 추앙으로 「사이코」를 다시 만들었다. 거의 복사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완벽한 재현이었다. 작은 장면하나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대부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이미 한번 검증된, 익숙한 스토리가 갖는 흡인력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진부하지만 「스타시스템」을 이용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로미오와 줄리엣」, 조디 포스터의 「애나 앤 킹」, 기네스 팰트로의 「졸업」에서 보듯 당대 최고 스타로 얼굴을 바꾸고, 테크놀로지로 포장한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외하면 흥행에도, 작품성에도 실패했다. 기껏해야 더욱 화려해진 의상이나 자랑할 뿐이다.
원작이 남긴 깊은 인상, 「재탕」이라는 숙명적 불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그 시대의 정서와 그에 맞는 배우의 이미지와 구성, 스토리가 존재한다. 리메이크는 그 중 시대와 배우와 영상만 손질할 뿐, 진부한 스토리나 정서, 구성은 원작에 얽매인다. 원작의 편안함과 영광을 쉽게 떨쳐버릴 용기가 없다. 「리플리」도 이런 충돌과 약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리플리」는 프랑스 르네 클레망 감독이 1960년에 만든 그 유명한 「태양은 가득히」를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알랭 들롱 대신 멧 데이먼, 마리 라포레 대신 기네스 팰트로가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태양은 가득히」가 명작으로 꼽히는 것은 보트에 매달린 친구의 시체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 알랭 들롱의 그 절망적인 눈빛의 잔상을 있지 못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 만은 아니다.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한 빈부격차 속에서 한 젊은이의 변신의 욕망과 좌절과 살인은 그 시대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클레망 감독은 그것을 서정적 영상과 알랭 들롱의 성격 연기와 스릴러적인 플롯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리플리」는 「태양은 가득히」보다 유려하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우아한 고전적 연출은 이탈리아 풍광과 어울려 이국적 정취와 화려함을 더한다. 그 풍광에 영화는 넋을 잃었다. 그 풍광은 피아노 조율사에 불과한 리플리가 초라한 현실보다는 멋진 거짓을 위해 끝없이 자신을 속이고 흉내를 내지만, 그 아득한 거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비극성이 살아있지 않기에 역설이 아닌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고 만다.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40년 뒤의 「리플리」는 그 주제를 사회적인 의식에서 개인적인 심리로 축소했다. 영화는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심리드라마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어설프게 느껴지는 「리플리」. 멧 데이먼의 연기 탓일까. 후반의 엉성한 스릴러 기법 때문일까. 오히려 상대 역인 선박 부호의 아들 디키(쥬드 로·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게서 40년전 알랭 들롱의 강렬한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도 당혹스럽다. 4일 개봉.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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