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캐릭터의 활용MBC 「베스트 토요일」 「뽀뽀뽀」 등 예능 프로그램에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드라마에는 「나쁜 친구들」이 처음이다. 만화 캐릭터를 통해 드라마의 빛깔을 더욱 다채롭게 꾸밀 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내레이터 시점 속으로 더욱 쉽게 빨려들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최근 만화 캐릭터의 활동 범위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브랜드, 상품 뿐 아니라 지역, 관공서, 특산물, 인물 등 사물을 상징화해 인식시키는 데 만화 캐릭터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할 지경이다. 최근 EBS 초등교과 프로그램에도 만화 캐릭터가 학습도우미로 등장해 아이들의 시선을 잡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화 캐릭터 만큼 사물의 특징을 절묘하게 끄집어내면서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화 컷의 삽입
원작이 만화인 KBS2 주간 시트콤 「반쪽이네」의 경우에는 만화 컷 자체가 드라마 중간중간 삽입되고 있다(사진3). 극중 상황에 대한 풍자적 컷을 통해 간결하면서 담백한 웃음을 주는 원작 만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다. 만화의 침투는 비단 만화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장면을 삽입하는 식의 만화 이미지 활용 뿐만은 아니다.
만화적인 것들-만화가 가진 몇가지 매력들
◆만화적 「점프 컷」
괴로운 표정, 눈물까지 찔끔거리는 얼굴 클로즈업 장면. 다음 컷은 뭘까? 닫힌 화장실 문 앞에서 오금을 저리며 서 있는 남자의 모습? 물론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이것이 「점프 컷」이다. 단 두 컷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점프 컷」은 만화의 기본적 운행 방식이다. 만화는 이 스타카토식 리듬을 통해 기발한 반전이나 코믹한 상황을 연출해 왔다.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은 만화적 상상력이 움트는 공간이다. 특히나 개그적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 점프 컷을 영화나 방송은 일찍부터 수용해왔다.
◆그림과 문자의 조화
최근 급증하는 방송 자막의 활용도 만화적이다. 만화는 그림과 문자를 절묘하게 배합해 색다른 의미 또는 재미를 창출해 온 장르였다. 영상표현력을 키우는 대신 문자에 의존한다고, 방송 자막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방송 자막이 주로 활용되는 토크쇼는 영상보다 언어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 자막 활용의 원조인 일본이 바로 만화왕국이다.
요즘에는 자막 뿐 아니라 다양한 만화적 아이콘들도 화면을 장식한다. SBS 「김혜수의 플러스 유」 「이홍렬 쇼」 등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만화적 아이콘(사진4)들은 만화가 일찍부터 개발해 온 표현방식이었다.
◆리얼리티 뛰어넘기
개봉중인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응원단 환호 장면의 경우,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만화에서는 말이 된다. 만화에서는 리얼리티를 따지지 않는다. 만화는 백지에서 출발한 기호의 예술이다. 백지는 감정, 의미의 논리만 있다면 그 어떤 표현도 가능케 한다. 여기서 응원단은 주인공의 분위기 상황을 부각시켜 주는 기호일 뿐이다. 대중문화는 이 무한한 기호적 표현력을 동경하고 있다.
◆만화적 캐릭터
만화 속 인물들은 대개 과장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특정 성격을 극단까지 밀어부쳐 개성화한 인물들이다. 뺀질거리는 인물은 극단적으로 뺀질거린다. 생긴 것부터 그렇다. 악동은 극단적으로 악동이다. 만화는 캐릭터에 대한 의존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일찍부터 특이한 캐릭터들을 끊임없이 창조해왔다. 그리고 지금 시트콤들은 그 만화적 캐릭터들을 흡수하고 있다.
■만화세대의 등장-판타지의 세계
「만화적」이란 말은 허무맹랑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통했다. 매체 자체로서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화는 그 역사가 대중 문화 중에서도 늘 하위문화 속에서 흘러왔기 때문에 대중의 원초적 꿈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허무맹랑했다. 달리 말하면, 판타지였다. 그것은 대중적 꿈과 욕망의 자유분방한 표현이며 인간 욕망에 대한 노골적인 투시였다.
그 속에서 자란 「만화 세대」가 이제 대중문화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자유분방하면서, 욕망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표현하는 세대다. 환상과 현실이 잡종교배되는 판타지의 세계, 그 만화적 공간이 이제 대중문화의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할리우드에도 '만화적 판타지' 바람
「판타지」는 두 얼굴. 숨은 권력 구조를 드러내는 정치적인 힘 뿐 아니라 「신기한 화면으로 관객의 눈길을 끄는 상업적 코드」로도 유효하다. 올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두 편의 작품 「아메리칸 뷰티」와 「그린 마일」은 만화적 판타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다.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는 매우 사실적인 영화이다. 인물들이 불만족스럽지만 그런대로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상의 균열 지점에 그러나 판타지를 배치했다. 레스터(케빈 스페이시)가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를 보는 순간부터 그의 환상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난다. 환상 속에 피어나는 장미는 아내 캐롤린이 정원에서 키우는 장미와 대비가 되며 그를 성적 환상과 일상의 불만 사이에 배치시킨다. 상상 속에서 안젤라는 장미 꽃잎으로 목욕하고, 그의 상상이 피워낸 장미밭에 알몸으로 누워있다. 래스터가 안젤라를 상상하면서 장미꽃을 피워내는 순간, 그것은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라 블랙 코미디로 변주된다.
「아메리칸 뷰티」는 자칫 묵직한 내용으로 관객이 부담을 갖기 쉬운 포맷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환상적 요소를 적절히 배치 함으로써 현실을 그대로 드러낼 때보다 진한 페이소스를 만들어 냈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그린 마일(The Green Miles)」은 비슷한 이야기를 다르게 보이는 방식으로 만화적 판타지가 매우 유효한 방식임을 증명한다. 사형수의 감옥, 억울한 옥살이, 흑백 죄수들간의 인종차별과 간수들의 인권 유린. 더 이상 흥미로울 수 없는 소재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야기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방식으로 「판타지」를 사용해 성공을 거뒀다.
영화는 콜드 마운틴 교도소 간수 폴 에지컴(톰 행크스)과 쌍동이 소녀 강간 살해의누명을 쓰고, 사형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존 커피(마이클 클락 던컨)의 관계가 중심 축이다. 자신의 비뇨기 질환을 낫게 하고, 소장 아내의 뇌종양까지 치료했으며, 밟혀 죽은 쥐를 소생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존에 대한 폴의 애정과, 그럼에도 그를 사형장으로 인도해야 하는 폴의 고뇌가 그려졌다. 병균을 빨아들인 존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날벌레떼들은 이 영화의 가장 화려하고 충격적인 만화적 판타지의 하나.
이야기의 고갈에 부닥친 할리우드 고전적 리얼리즘 영화는 새 통로가 필요했다. 판타지와의 교배를 통해 새로운 전형의 리얼리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잡식성」은 할리우드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판타지는 앞으로도 많은 리얼리즘 영화의 탈출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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