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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으로 빚어내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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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으로 빚어내 삶의 향기

입력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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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KBS2 「TV문학관」은 노장 PD들이 주로 빚어낸다. 마디마디 탄탄하게 맺고 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연출 솜씨엔 세월의 힘이 묻어 있다. 노장의 관록은 비단 장인적 기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응시가 드라마를 관통한다. 묵은 추억의 사진을 들추듯 아쉬움과 그리움이 피어나지만, 인생을 돌아보는 자의 깨달음과 지혜가 담겨있는 드라마를 빚는다.

5일 밤 10시 방송되는 「TV 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 역시 노장의 역작이다. TV 문학관, 특집극 등을 주로 맡아왔던 장시우(55) 제작위원이 연출을 맡았다. 장위원이 택한 원작 또한 탄탄한 문학성이 보장된 작품.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소설가 이균영의 유작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이다. 동덕여대 교수를 지낸 이균영씨는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역사학자다.

주인공은 30년 근속의 화물차 기관사 박석우(박진성). 15년전 술집 작부 출신이었던 아내 아진(송채환)과 사별하고 딸(명세빈)과 가출한 아들 성호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들의 친엄마는 따로 있었다. 탄광촌 문곡의 고향 친구 옥순(김혜리). 한때 동거도 했지만 도시에서의 성공에 불타던 그녀는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박석우의 사랑과 인생은 한편으로 우리나라 근대화가 남긴 자취다. 그래서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 전형성이 진부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회상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절묘한 오버랩 덕분. 이야기는 신참 기관사가 영동선 석탄차를 처음 운행하게 되면서 선배 박석우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인생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기차다. 그것은 또한 죽을 힘을 다해 달리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인생의 또다른 모습을 비춰주는 메타포(은유)다. 박진성, 김혜리, 송채환 등 배우의 연기도 돋보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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