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가 별겁니까』테헤란로에만 벤처기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농촌풍경을 흙과 거름냄새 속에서 밭갈고 돼지키우는 모습만으로 연상해서는 큰 오산. 웬만한 도시 제조공장보다 컴퓨터와 인터넷 활용이 앞서있는 「디지털농민」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충북 진천에서 양돈업을 하는 유재록(柳在綠·41)씨. 2일 새벽 축사를 한바퀴 둘러본 유씨의 눈에 어린 돼지 두마리의 몸놀림이 웬지 맥 없어 보였다. 유씨는 즉시 축사 옆 「사무실」에 가 컴퓨터를 켠 뒤 이들 돼지의 고유번호인 456, 467번을 입력시켰다.
화면에는 곧 두마리 모두 5번 요크셔종 돼지의 「자식」들임이 나타났다. 다시 5번을 검색하니 지난해 4, 7월 연거푸 유행성폐렴을 앓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혹시…』하는 생각에 다시 「질병항목」을 클릭해보니 새끼돼지들의 증상도 바로 유행성폐렴. 어미로부터 전염된 듯 했다.
유씨는 일단 5번과 456,467번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뒤 치료를 위해 「독방」에 격리했다. 이 돼지들은 더이상 「자식」을 생산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하고, 심한 경우는 「즉결처분」까지 당하게 된다.
유씨 농장의 2,500마리 돼지에는 모두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고 번호별로 어미, 분만일, 젖뗀 시기에서부터 병력(病歷), 판로까지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컴퓨터에 입력돼 있다. 유씨는 『우리 돼지들은 워낙 관리상태와 육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주문이 밀리고 있다』며 『국내보다는 수일이 더 좋은 일본으로 대부분 수출한다』고 자랑했다.
강원 강릉시 오대산자락에서 상추 케일 등 유기농산물과 토종닭 1만여마리를 키우는 송인숙(여·宋寅淑·36)씨는 『지난해 4월 갑자기 병아리 절반이 폐사했을 때 컴퓨터가 없었다면 남은 닭 모두를 잃을 뻔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사고」직후 증세를 꼼꼼히 적어 농업진흥청 등 농업정보관련 홈페이지에 E_메일을 띄웠고, 바로 다음날 『바닥에 깔아놓은 참나무톱밥에서 생긴 곰팡이로 인한 「대장균 감염」인 만큼 소나무 톱밥을 사용하고 소독을 철저히 하라』는 답장을 받았다.
송씨는 요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이를 통해 주문을 받고 PC뱅킹으로 입금사실을 확인한 뒤 출하하는 「인터넷 상거래」로 한창 재미를 보고있다.
충남 아산에서 배농장을 하는 이민우(李敏雨·57)씨도 『홈페이지를 통한 직거래를 한 뒤부터 경매시장이나 도매상을 거칠 필요가 없어 신선도와 가격 경쟁이 크게 높아졌다』며 『얼마전 옆 집도 홈페이지를 개설하자마자 서울의 모백화점에서 내려와 무말랭이를 「싹쓸이」해갔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현재 가축사육과 관리, 작물재배, 생산품 판매 등에 컴퓨터를 직접 활용하는 「디지털 농가」가 6,000가구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PC보유 농가가 이미 전국적으로 14만9,000여 가구에 달하고 있어 전통농업의 디지털화가 앞으로 더욱 급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당장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홈페이지(www.affis.or.kr)나 농산물통합쇼핑몰(www.acim.or.kr)에 접속하면 이들 디지털농가와의 인터넷 직거래가 가능하다.
강훈기자
hoony@hk.co.kr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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