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영주권자 해병대 자원입대외국영주권을 가진 이민자 자녀가 굳이 귀국,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모범적인 병영생활을 하고있다.
해병대 1사단 33대대 9중대 소총수 김상협(金相協·24)일병은 부산 대도중학교 2학년때인 1992년 아버지 김성길(金盛吉·45·무역업)씨를 따라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로 가족이 옮겨간 이민 1.5세.
김일병이 해병대 입대를 생각한 것은 이국생활이 익숙해지고 모국의 기억도 차츰 잊혀갈 무렵인 96년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페루방문이 계기가 됐다.
『당시 환영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 동포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저도 므로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그일 이후 김일병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내내 고민하다 부모와 상의 끝에 모국에서의 군복무를 결정하고 지난해 8월 해병대에 자원했다.
『고된 훈련을 받으며 한때 입대를 후회하기도 했지만 동료들의 애정어린 질책과 위로가 힘이 됐다』는 김일병은 『이국생활 7년보다 더 길게 느껴진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빨간 명찰을 달았을 때 생애 가장 큰 성취감과 함께 이제야 대한민국의 남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정훈기자 jhlee@hk.co.kr
▲외인부대출신 청년 장교되다
해병대로 군복무를 마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외인부대」가 됐던 청년이 육군3사관학교를 나와 소위로 임관한다. 3일 3사관학교 35기로 졸업하는 이무철(李戊喆·26)소위의 삶은 「강한 것에 대한 도전」그 자체다.
유난히 몸이 약했던 이소위는 경남전문대 전자과 1학년 때인 1993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26개월간의 훈련을 통해 굳건한 몸을 다진 이 소위는 전역 직전 우연히 「외인부대」라는 책을 보고, 세계 110여개국의 「사나이」들이 모인다는「레종 에뜨랑제」에서 체력과 용맹을 겨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1996년 12월 불어책 한권만 들고 프랑스로 향한 그는 외인부대 훈련병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11분안에 1.8㎞달리기, 매일 10㎞구보 등 인간의 한계에 넘나드는 4개월간의 지옥훈련을 마쳤을 즈음에 다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 젊음을 바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그는 조국의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귀국, 1998년 3월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이소위는 『3군사관학교에서 외인부대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보람을 느꼈다』면서 『분단된 조국을 지키는 육군 장교로 거듭나겠다』 고 다짐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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