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전 군사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가 고국으로 돌아간다.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은 2일 『피노체트에 대한 건강 진단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재판을 받기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의 석방 결정을 발표했다.
피노체트는 런던 인근 비행장에서 대기중인 칠레 공군기를 이용,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날 경찰이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피노체트 호송작전을 계획, 이미 예행연습까지 마쳤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의 결정에 대한 재항소가 있을 수 있으나 인도 문제의 경우 내무장관이 광범한 재량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로써 1998년 스페인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의 요구에 의해 런던에서 체포된 이후 「뜨거운 감자」였던 피노체트 처리 문제는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영국이 피노체트를 석방하게 된 것은 국제사회의 이해타산의 결과라는게 정론이다. 영국은 과거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일때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영국을 지원한 맹방(盟邦) 칠레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영국은 특히 피노체트를 스페인에 인도할 경우 무기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칠레를 무시할 수 없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영국 정부가 11일로 예정된 칠레 대통령 취임식에 존 배틀 외무차관을 경축사절로 보내기로 했다』면서 영국의 「본심」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칠레도 일단 독재자의 운명을 외세에 맡기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다. 피노체트 군정 시절 반독재 투쟁을 벌였던 리카르도 라고스 신임 칠레 대통령은 겉으로는 「피노체트 단죄」를 공언했지만, 피노체트가 스페인으로 인계될 경우 우익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음 졸여야 했다.
스페인 역시 법원에서는 피노체트의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나 정부는 이 문제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는게 대체적 견해다. 스페인에서 피노체트 재판이 진행될 경우 프랑코 치하의 인권유린이 다시 부각돼 곤혹스런 상황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스페인 정부가 영국 정부의 묵인 아래 피노체트 건강악화설을 여론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피노체트가 유럽사회에서 재판에 부쳐질 경우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체체 굳히기 과정의 「더러운 전쟁」에서 수행한 미국의 지원이 폭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 정부에 석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영국은 16개월간의 치열한 법적 다툼 끝에 반인륜적 범죄의 응징을 표방한 자국의 법원 판결을 뒤집으며 「병마와 싸우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독재자」를 석방한 셈이다. 피노체트는 이제 칠레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집권기간 중 3,000여명을 희생시킨 그에게 칠레 국민들이 어떤 「응분의 처벌」을 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피노체트 재판관련 일지
1998.10.27 영국정부, 런던에서 피노체트 전격 체포
1998.11.25 영국상원, 피노체트 면책특권 거부
1999.10. 9 런던법원, 피노체트 스페인 인도 결정
2000. 1.11 영국 내무부, 피노체트 가택연금 해제 및 석방 방침 결정
2000. 1.31 런던법원, 벨기에 정부의 석방 저지 소송 기각
2000. 2.11 피노체트 건강 위독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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