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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에 우리가 사네] (16) 관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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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에 우리가 사네] (16) 관음리에서

입력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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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답사] 문경 관음리에서하늘재는 관음리(경북 문경시)에서 미륵리(충북 충주시)로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고개다. 신라 아달라왕의 북진팽창 정책은 2세기 중엽에 이미 백두대간을 넘어서 중원을 겨누었다.

아달라왕은 소백산맥에 하늘재(당시 이름은 계립령)를 뚫었고 이어 죽령을 개척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하늘재는 서기 156년에 죽령은 서기 158년에 열렸다. 하늘재는 문헌상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며 고개다. 조선초기에 문경새재가 열리기 전까지 하늘재는 영남과 경기 충청을 오가는 간선도로였다.

지금은 이화령 고갯길이 열리고, 고개 밑으로는 터널까지 뚫려서 자동차는 하늘재로 들어올 일이 없다. 하늘재의 충북구간은 아직도 소나무 숲 사이를 겨우겨우 헤쳐나가는 비포장 소로이다. 2,000년전의 옛길 하늘재는 문경새재 의해 버림받았고, 이화령에 의해 버림받았지만 이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은 하늘재의 축복이다. 자전거는 하늘재 밑 관음리 마을에서 출발한다.

하늘재 옛 길가 관음리 마을에서는 오래된 백자가마에 장작불을 때고 있었다. 시루떡처럼 익어 가는 가마 옆에서 불 아궁이를 들여다보며 하룻밤을 묵었다. 이 가마의 이름은 「조선요」이다. 19세기 초의 이 마을 도공 김영수(金永洙·1803-?)씨가 1843년에 이 가마를 지었다. 그의 아들·손자들이 150여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이 가마에 불을 땠고, 지금은 8대손인 김영식(金榮植)씨가 물려받았다. 이 가마는 현재 작동되고 있는 가마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이다. 금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곧 보존 처리된다. 이 날 때는 불이 마지막 불이 될지도 모른다고 김영식씨는 말했다.

하늘재 아래 오래된 백자가마 아궁이 속에서 불길은 없었던 생명을 빚어내서 숨을 불어넣는 여성성(女性性)의 힘으로 타올랐고, 가마의 내부구조와 그 구조물들의 기능은 거대한 인공의 자궁처럼 보였다. 이 인공은 섬세하고도 치밀한 전략의 소산이지만, 가마는 그 전략을 불과 바람과 연기의 흐름 속에 완벽하게도 순응시켜서, 전략의 거친 구조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가마는 단지 밋밋한 산비탈에 순하게 엎드린 흙더미처럼 보인다. 가마의 천정은 둥근 돔이다. 불길은 이 돔 안에서 고이고 돌고 흐른다. 불길은 물길과 같다. 억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길은 빠져나가면서 또 흘러 들어온다. 불길은 새롭게 흔들리는 바람이다. 봉통(맨 아래의 아궁이)에 때는 불은 첫째 칸을 예열시키고, 첫째 칸을 돌아 나온 불길은 여러 개의 살창구멍으로 빠져나가 둘째 칸을 예열시킨다. 땅바닥에 깔린 살창구멍들은 불길의 실핏줄이며 칸과 칸 사이의 숨길이다. 불길은 순환하고 칸들은 호흡한다. 가마 속에서는 이 순환계통과 호흡계통이 포개져 있다. 살창구멍은 가운데 쪽이 작고 벽 쪽이 크다. 가운데로는 작은 불길이 흐르고, 벽 쪽으로는 큰 불길이 흐르면서 가마는 외부의 온도를 차단하고 그 내부에 쟁여진 그릇들의 생명을 자라나게 한다. 그 때 더운 가마는 자궁 속에 아기를 가진 젊은 어머니와 같다. 세습도공 김씨는 가마에 불을 때는 일을 「그릇을 굽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가마를 익힌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 한마디는 흙, 물, 바람, 불을 결합시켜서 없었던 생명을 만들어내는 백자가마의 근원적인 여성성을 암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가마 속에

쟁여진 수많은 그릇들의 개별성은 잘 익은 가마의 완숙성 속에서만 태어나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꽃 속은 맑고 고요하고 깊다. 그 곳은 불의 핵이고 불의 보석이다. 그곳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맑게 가라앉는 곳이다. 그 뜨거운 곳은 거의 차가와 보인다. 여기서는 많은 산소가 필요하지 않다. 산소가 많이 필요한 불길을 거죽에서 너울거리며 뻗어나가는 겉불꽃이다. 겉불꽃은 아직 정돈되지 않는 젊은 불길이다. 겉불꽃은 출렁거리면서 가마 속을 흘러

가고 속불꽃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기름처럼 고요히 가마 속을 흘러간다. 가마를 익히는 불길은 열(熱)이 아니라 흐름이다. 겉불꽃은 공기와 더불어 발랄하게 놀아난다. 겉불꽃은 자유롭고 무질서하고 불안정하다. 대체로 말해서 분청사기와 막사발의 그 자유롭고 여유로운 질감은 이 겉불꽃이 놀다간 자리이다. 그래서 막사발들은 사람처럼 제가끔의 표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속불꽃은 바람과 뒤엉키는 그 놀아남의 흔적을 들키지 않는다. 속불꽃은 맹렬하고도 적요하다. 이 맑은 불은 장작에 뿌리박은 불길의 운명을 이미 떠난 것처럼 보인다. 이 불길은 흙을 흔들지 않고 고요히 흙 속으로 스며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표면에 깊고 깊은 색깔의 심층구조를 드러나게 한다. 깊은 것은 깊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백자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지만, 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그릇의 색깔은 멀고 아득한 잠재태로서 흙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겉불꽃이 되었건 속불꽃이 되었건 어떻게 불이 수억 년을 잠자는 흙을 흔들어 깨워서 그 아득히 먼 아름다움을 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서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 보일 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 불길들이 애초에 장작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도공도 거기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불과 흙 사이의 일로 사람이 거기에는 간여할 바가 못되고, 다 알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몽매한 일임을 이 오래된 가마 앞에서는 알겠다. 가마는 젊은 어머니인 것이다.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해두는 수 밖에는 없다. 도공 김씨는 밤늦도록 아궁이에 불을 땠고, 자전거를 타러온 사람은 자전거를 팽개쳐놓고 불장난하는 아이처럼 장작 몇 개피를 아궁이에 넣었다. 빨간 불길과 노란 불길이 모두 사그러들자 가마 안에는 맑은 불길이 고요히 흘렀다. /글=김훈편집위원 사진=이강빈

■[자전거답사] 문경 관음리에서

1843년에 이 「조선요」를 지은 김영수씨의 아버지 김광표(金光杓·1760-?)와 할아버지 김취정(金就廷)씨도 모두 이 마을의 도공이었다. 그래서 문경 관음리 마을에 뿌리내린 경주 김씨 계림군파 집안의 도공 내력은 이제 8대째다. 문경 시내에서 「영남요」를 경영하고 있는 김정옥(金正玉·69)씨는 이 집안의 7대 도공이다. 김정옥씨의 할아버지 김운희(金雲熙)씨는 도자기 솜씨가 조정에까지 알려져서 경기도 광주의 관요로 발탁되어 갔다. 김정옥씨는 아버지 김교수(金敎壽·작고)씨로부터 기예를 전수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옛 가마로 올라가는 오솔길 옆에 묻혀 있다.

김정옥씨는 지난 96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기장으로서는 최초이고 유일한 무형문화재이다. 김씨의 아들 김경식(金璟植, 34)씨도 아버지의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되어서 대를 잇게 되었다. 김씨는 관음리에 있는 선조들의 옛 가마(조선요)를 그대로 본 받아서 「영남요」를 지었다. 크기와 내부구조와 건축기법을 그대로 재현했다. 소나무 장작을 때는 망댕이 가마다. 망댕이는 가마 천정에 돔을 쌓을 때 쓰는 구운 흙벽돌이다. 고열에도 오랜 세월 견디어내고, 천정의 불길 흐름을 부드럽게 해 준다. 김씨는 아버지에게 도공일을 배우던 시절에 관음리 옛 가마 주변에는 30여기의 사기가마들이 가동되고 있었다. 마을 공동가마도 있었다. 공동가마는 다 무너지고 지금은 빈터와 바닥구조의 일부가 남아있다. 그릇을 받으러오는 지게꾼들이 가마 앞에 줄을 서 있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스텐그릇과 수입 도자기가 보급되자 사기 그릇의 생산은 급속도로 몰락했다. 한국에서 사기가 몰락해가던 6·25 직후에 일본인 도예가 고바야시 도오고(小林東五·67)씨는 이 산간벽촌까지 찾아와 6년을 머물며 김씨의 아버지에게서 도예를 배워갔다. 그 때 한국에서는 사기가마터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바야시는 지금 일본 도예계의 대가가 되어있다.

관음리 옛 가마촌은 지금 「조선요」하나만 남고 다 무너져버렸다. 「조선요」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더 이상 불을 땔 수 없게 되었다. 「조선요」에 때던 불은 새로 지은 「영남요」에서 그 후손에 의해 타오르게 되었다. 맥을 이어가는 일의 어려움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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