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거리패(꼭두쇠 이윤택·李潤澤·48)의 진실은 이 극단은 유명세 탓에 흔히 서울지역 극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극단의 태생은 서울과 거리가 멀다부산일보 기자였던 이씨가 퇴직금 660만원으로 부산 중구 광복동옆에 가마골소극장을 열여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한 것은 86년 7월 창단 이후 연희단거리패는 외국연극을 흉내내는 「편하고 순탄한 길」을 걷지 않았다 굿을 연극화하는 등 실험을 계속했고 합숙을 하면서 지옥훈련에 가까운 맹렬한 연습 결과전국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극단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극단식구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10여명의 식구들이 연극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만 뭉쳐 합숙훈련에 들어갔지만 불과 몇 개월만에 자금은 바닥나고 이씨의 고교(경남고)동문들로 부터 도움을 받아 겨우 살림을 꾸려나가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결과 이씨와 고락을 같이하던 단원중에는 한국 베스트 30대 연극인에 뽑힌 김광보씨, 95년 서울 연극제 남자연기상에 빛나는 박지일씨 등 걸출한 연극인들을 배출했다
「푸가」 「히바쿠샤」 「심판」 「시인추방」 등을 무대에 올려 연극계의 주목을 받은 일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88년 10월 국내 최초로 우리 고유의 굿을 연극화한 「산씻김」은 「어쩡쩡한 시도」란 신랄한 비판에 처하기도 했지만 단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삿씻김」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서울(바탕골 소극장)에 진출시킴으로써 지방연극단에 불과했던 연희단거리패를 전국전인 극단으로 키울 수 있었고, 두 번째 굿 「오구-죽음의 형식」은 부산 소극장 연극사상 최대관객동원 기록에 이어 서울은 물론 일본 독일 공연으로 한국연극의 세계화에 한몫했다
올들어서는 1월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해맞이 나온 수십만명의 관객을 상대로 「해야 솟아라…새천년 해야 솟아라」를 공연, 뭉클한 감동을 준 데 이어 지난달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일식」도 큰 호평을 받았다
이씨는 『앞으로도 밀양연극촌에서의 철저한 교육·훈련을 통해 작품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전국순회공연은 물론 해외공연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김창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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