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많이 작업했습니다. 수백점 중에서 정제된 그림만 고르는 데(전시회를 위해) 애를 먹었어요』강렬한 원색의 「칸막이」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 황주리씨가 4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3월 8일부터 21일까지 선화랑. 제14회 선미술상 수상작가 기념전을 겸한 전시회.
인터뷰 요청에 북한산 작업장은 추울 것이라며 동부이촌동 집으로 초대한 황씨는 관객들과의 4년 공백을 「어마어마한 작업량」 이란 말로 대신했다. 같은 작품을 갖고 이곳저곳 화랑을 돌아다니며 1년에도 두세번 개인전을 갖는 많은 작가들을 생각하면, 그녀는 확실히 독특한 그림세계 만큼이나 다른 작가와는 「다른」 작가이다.
『설치작업도 병행하고 있지만 이번 전시회에는 그림만 걸려고 해요. 국내나 국외 작가들 사이에 설치작업이 주류를 이루면서 회화는 낡은 매체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저는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그림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제가 설치작업을 하는 이유는 늘 그림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같은 것이죠』
거실과 건넌방에는 그녀의 최근 작들이 여러 점 걸려 있었다. 사진촬영을 하려 하자 그녀는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 섰다.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이라고 했다. 1998~1999년 2년에 걸쳐 완성한 9㎙X 2.2㎙(3점으로 구성된 연작 시리즈)의 대작 중 하나였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 따 온 제목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 많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나의 모습만 들여다보던 그림이 「내가 아닌 너」로 옮겨간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까요』 그녀는 뛰어난 자신만의 촉수를 갖고 주위의 사물을 마치 스냅사진 찍듯 머리 속에 담아 자신의 작은 칸막이 구조의 그림에 옮겨담고 있다. 원이 되기도 하고 꽃이나 등이 되기도 하는 칸막이 속에서 인터넷, 컴퓨터, 전자계산기, 노래방, 고층빌딩 망원경으로 엿보기, 조깅, 휴대폰 등 요즘 도시인의 삶과 문명이 옴니버스 스타일로 표현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태어나 『골목길에서 이 세상을 시작했던』 그녀는 1987년부터는 도시 반경을 맨해튼으로까지 넓혀 작업하고 있다. 1년이면 6개월씩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그녀가 그리는 도시인은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어도, 심지어 허리를 껴앉고 함께 자전거를 달려도 행복한 얼굴이 아니고 서로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얼굴이다.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도시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마모돼 가는 표정은 메마르고 황폐한 세상 속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다가온다. 노랑 초록 빨강 보라 파랑의 화려한 원색만이 도시인의 살아있음을 입증할 뿐이다.
그녀의 감수성은 흑백의 작업 「맨해튼 블루스」 속에서 더 빛난다. 1987년 이후 『일기쓰는 자세로 솔직하고 편하게 매일 한 점씩 그리고 있다』 는 흑백 그림 속에는 원색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의 풍경이 실려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게 하는 서사시적 그림을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틈이 없어 보이는 작품 만큼이나 허술함이 엿보이지 않는 단단한 표정으로 그녀는 인터뷰에 응했다. 선화랑 대표 김창실씨 말대로 『오직 그림에만 전념하는 성실성과 근성, 재능으로 무장된 작가』였다. 검은 뿔테 안경은 그를 더욱 단단히 에워싸고 있는 또하나의 무기였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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