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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돈…돈…돈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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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돈…돈…돈내놔"

입력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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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수도권에 공천을 받은 정치신인 A씨는 요즈음 『집도,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동생이 사준 휴대전화 두대뿐』이라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공천발표 직후 지역구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보름이 채 안되는 동안 말로만 듣던 「선거 브로커」에게 신물이 날 정도로 시달린 뒤 어렵사리 터득한 대처수단이다.이들에게는 「가진 것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입당 원서를 몇천장 주면 사람을 모아 주겠다』『나를 잡으면 몇천표가 움직인다』는 등 갖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브로커들 뒤에는 예외없이 입당원서 한장당 몇만원이라는 식의 이들만의 「거래법」이 뒤따른다.

그러나 정작 A씨를 낙담하게 만드는 것은 심심찮게 걸려 오는 일반 유권자들의 전화다. A씨는 29일에도 『○○산악회인데 등산용 모자를 협찬해 줄 수 없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돈도 없을 뿐만아니라 386세대로서 깨끗한 선거를 치르고 싶다』고 알아듣게 얘기를 한다고는 하지만 표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선거판의 단골메뉴인 친목회 회식비 등 이들의 요구는 한건당 50만-100만원 수준인데 이들의 요구를 하나 둘 들어주다 보면 하루에 1,000만원이라도 모자랄 판이다.

A씨는 현역의원인 상대당 공천자의 활동을 지켜보면 아예 무력감에 빠진다. 한번 제작하는 데 5,000만원~1억원씩 하는 홍보물을 수도 없이 뿌리면서 정치신인들에게는 원천봉쇄돼 있는 의정보고회를 빙자, 거의 매일같이 집을 옮겨 가며 사랑방 좌담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선거도 치러보기 전에 「나자빠지겠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경찰서장을 찾아가 『단속활동을 더 강화해 달라』고 부탁해 보았지만 경찰서에선 『선거사범은 「간통범」과 같아서 현장을 덮쳐도 증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딴소리다.

그나마 발로 뛰면서 얼굴 알리기에 나섰는데 정치신인들에게 「지극히 불리한」선거법 덕분에 명함을 돌린다는 이유로 벌써 4건이나 고발당했다.

그래도 「금배지」의 유혹은 강렬한 것이어서 A씨는 최근 5,000만원 상당의 홍보물 제작을 가계약했다. 퇴직금도 다 떨어져 계약금 500만원만 주고 잔금은 『당선되면 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지구당 사무실을 그대로 물려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정산도 물론 「당선」후이고 새로 팀을 짠 선거요원들의 보수도 외상이다. 거기다 청중 동원에 최소 1억원 이상이 든다는 정당·합동연설회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외상으로 의원이 된들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가 A씨의 새로운 고민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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