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상업은행중 하나인 뱅커트러스트의 찰스 샌드포트 전회장은 최근 『멀지않은 장래에 전통적 의미의 은행은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급격한 금융환경의 변화로 재래 금융산업의 존립기반과 기존 질서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견이다.전세계 금융시장은 빅뱅중이다. 각국의 금융개방과 금융정보기술 발달로 세계 금융시장의 단일 시장화가 진전되면서 금융겸업화(유니버셜뱅크)와 대형화(메가머저)가 21세기 전세계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엄격한 분업주의를 고수해왔던 미국과 일본에서도 최근 겸업화와 금융지주회사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는 등 금융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초대형 합병 움직임은 국적이나 업종을 초월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은행인 씨티은행과 대형보험사인 트레블러스가 합병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말 다이이치강교(第一勸業)·후지(富士)·니혼코교(日本興業)은행 등 3개 대형은행이 금융지주회사를 전제로 대통합에 합의했다. 세 은행이 통합할 경우 자산규모가 약 140조엔으로 세계 최대은행으로 급부상, 세계 은행산업의 판도를 하루 아침에 뒤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94년까지만해도 세계 1-5위를 독차지하고 있던 일본 은행들은 폐쇄적인 기업문화와 소유구조 등으로 세계적인 합병
흐름에 뒤처지면서 세계 5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었다.
국내 금융산업도 금융빅뱅의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형화와 겸업화를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 더 이상 「간판」이나 기득권에 매달리다가는 활로가 없다.
하나은행과 독일의 보험회사인 알리안츠의 제휴는 2차 금융빅뱅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알리안츠와의 합작을 통해 합병에 대비한 자본확충은 물론 투자신탁운용회사와 은행과 보험업무를 잇는 방카슈랑스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금융겸업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하나은행 김승유(金勝猷)행장은 『장기적으로 금융지주회사를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조흥은행 경제연구소 김관태(金官泰)책임연구원은 『2차 금융빅뱅은 합병에 성공한 대형은행이 금융지주회사 형태로 보험 증권 투신 등 자회사를 거느리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종합금융그룹의 출현에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 분리를 추진하는 정부의 의중이 반영돼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재벌이 금융계열사들을 사금고화해 시장자금을 독식하는 현상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에 의한 금융재벌의 탄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월 본격적인 금융겸업의 전단계인 금융기관간 업무제휴를 허용한데 이어 올 상반기중으로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마련하는 등 2차 금융빅뱅을 유도할 환경을 적극 조성할 방침이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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