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강우량을 관측(1639년)한 것보다 200년이나 앞선 세종 23년(1441년) 측우기를 발명, 강우량을 측정해 왔다. 1917년 일본 학자 와다는 현대적 우량계로 측정한 국내 강우량 데이터와 비교, 측우기 기록을 수정하는 환산식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환산식에 따르면 1800년대 강우량은 1900년대 강우량과 큰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수년 전 서울대 임규호(대기과학과)교수는 도량형만 현대화해 원래 측우기 관측자료가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00년 전 과거의 기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산림 전문가인 박원규(충북대 산림과학부)교수가 측우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와다가 우리나라 강우량을 측정했던 시기가 유난히 가물었던 건조기였고, 원래 측우기자료가 맞다는 임교수의 손을 들었다.
박교수가 근거로 든 것은 나무의 나이테. 나이테를 이용해 고기후(古氣候)를 복원하려는 것이 바로 「연륜(年輪)기후학」이다. 최근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세계적 문제가 되면서 연륜기후학은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 연구자들은 수령 6,000년 된 잣나무 등을 통해 20세기 기온상승을 지난 수백년과 비교하고 있고, 우리나라 기상청도 지난해 「기후변화 시그널 검출기술」 개발 연구를 시작, 고기후 복원에 착수했다. 수백, 수천년간 켜켜이 형성된 나이테는 살았던 동안의 기후를 말없이 증언한다. 그리고 미래를 견주어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나이테를 통해 기후를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세포의 생장이 기온, 강우량을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 나이테는 봄 여름동안 세포가 크게 성장한 밝은 부분(춘재·春材)과 가을 겨울에 세포가 살지지 못한 짙은 부분(추재·秋材)이 반복됨으로써 형성되는데 기온, 강우량에 따라 나이테 패턴이 달라진다.
나이테를 처음 기후연구에 이용하려고 생각한 것은 기상학자가 아닌 천문학자였다.미국 천문학자 더글러스는 1914년 제재소에 쌓인 나무들의 나이테가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데에서 착안, 나이테 패턴을 통해 태양의 흑점주기를 알아내고자 시도했다. 나이테 외에도 산호, 빙하시추핵, 화분(花粉), 고문서기록 등으로 고기후를 복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산호와 빙하는 없고 고문서나 화분은 보존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지구온난화와 관련, 나이테 분석은 최근 70년간 기온이 급상승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마지막 빙하기」로 불리는 2만년 전 빙하기 이후 지구의 평균기온은 2도가 상승했는데 20세기 들어 1도가 올랐다. 이러한 최근 수십년의 기후변화가 수백, 수천년 동안의 자연적 변동 범위를 벗어나는지, 즉 산업화로 인한 인위적 요인 때문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궁극적 연구목표다.
기상청 오재호예보연구실장은 『온실가스 저감에 관한 국제협상에는 수십조원이 걸려있는 등 각국이 기후변화에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데도 우리나라 기후변화가 어떻게 진전됐는지 분석한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박원규교수는 『잣나무 나이테로 1600년대 이후 여름철 기온변화를 분석했으며 앞으로 겨울철 기온변화를 분석해 봐야 우리나라의 온난화 추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테 연구는 기후학에만 외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고건축물 또는 유적에서 발견된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유적의 연대를 측정하는 연륜고고학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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