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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8) 역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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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8) 역사비평

입력
2000.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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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비주류 사건, 인물 재조명한「역사비평」[담론의 산실]

계간지 「역사비평」이 올 봄호로 50호를 채웠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후죽순처럼 지표 위로 솟아오른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잡지들은 대부분 시들고 사라져 지금은 이름조차 흐릿하다. 그간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잡지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자명하다. 항쟁 이태 뒤인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의 브란덴부르크문이 열리고, 그 뒤 한두해 사이에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정권들이 속속 무너지면서, 그때까지의 진보적 담론들이 준거하던 물질적 틀이 엉망진창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역사비평」은 1980년대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세계의 진보진영을 강타한 「페레스트로이카 효과」 또는 「베를린 효과」를 견디며 살아남았다. 이 잡지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일차적 에너지는 말할나위 없이 이 잡지 관련자들의 헌신이다. 그러나 「역사비평」이 단순한 진보적 잡지가 아니라, 자신이 생산하고 수용하는 진보적 담론들을 구체적 수준에서 민족적 관점이라는 실로 꿰어내는 국학 계몽 잡지라는 사실도 이 잡지의 생명력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역사비평」은 6월 항쟁 직후인 1987년 9월에 역사문제연구소의 기관지로 창간됐다. 이듬해 3월에 선보인 2호까지는 형성사에서 무크로 나왔고, 그 해 여름호부터 계간지로 전환해서 지금까지 역사비평사에서 나오고 있다. 원혜영(현 부천시장), 박원순(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씨와 지금의 발행인 장두환씨가 차례로 역사비평사의 재정을 떠맡아 역사문제연구소의 진보적 사학자들과 함께 이 잡지를 꾸려왔다.

「역사비평」의 창간 목표는 역사연구의 대중화와 새로운 역사인식의 정립, 이 두가지다. 대중의 계몽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순수한 학술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본격 논문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딱히 대중지도 아니다. 「역사비평」이 스스로 내린 자기규정은 「역사전문 대중지」다. 그러니까 「역사비평」은 대중적 학술지 또는 학술적 대중지라고 할 수 있다.

창간 이후 이 잡지는 그때까지 주류 사학계가 그려온 한국사의 상(像)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힘썼다. 「역사비평」의 공로 가운데 하나는 남한의 국정 교과서가 백안시한 사회주의 운동을 한국 현대사의 한 축으로 복원시킨 일일 것이다. 일제시기와 해방기에 사회주의 활동을 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잊혀진 역사를 되살린 「한국 현대사의 증언」 난은, 역시 오랫동안의 금기를 깨고 북한의 역사 연구를 소개한 「남북 역사학의 쟁점」 난과 함께, 한국사 인식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분단사학」을 넘어서 「통일사학」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만들었다.

「역사비평」이 고대사나 중세사에 완전히 무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잡지의 관심은 현대사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가까운 과거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민주화 도정에 있던 한국 사회의 진단과 처방을 돕는 나침반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잡지의 특집과 기획은 현대사에 대한 비주류적 해석의 표본실이었다. 민족해방 투쟁, 통일전선, 미군정의 성격, 제주도 4·3사건, 6·25, 4·19, 5월항쟁 등 한국 최현대사의 커다란 쟁점들이 「역사비평」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또 남민전 사건, 사노맹 사건 등 파쇼 정권 하에서 일어난 많은 조직 사건들을 재조명해서 그것들을 우리 역사 속에 적절히 배치하는 작업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역사비평」은 대중의 계몽에 그치지 않고, 본격 논문을 통해서 한국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힘썼다. 연재물 「백남운 연구」는 월북 뒤에 한국 사학계에서는 거의 조명되지 못한 경제사학자 백남운의 학문과 삶을 복원했고, 또다른 연재물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은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그때까지의 논구를 총괄함으로써 이 실패한 반제반봉건 혁명에 대한 진전된 인식의 기초를 마련했다. 20세기 한국 문학사가 건너뛸 수 없는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이면서도 월북 이후의 정치활동 때문에 남쪽에서 복자(覆字)로만 거명되던 홍명희도 「역사비평」의 눈길을 받았다.

홍명희에 대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비평」은 20세기 문학사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다. 임헌영, 김철, 최유찬, 김재용씨 등 문학연구자들이 이 잡지의 편집에 참가해 일제하 카프 운동의 재평가와 북한 문학의 탐색에 기여했다. 주간은 창간때부터 서중석(성균관대 교수)씨가 맡고 있다./

창간사

6월 민주혁명과 7, 8월의 민주노동운동은 그 규모면에서나 성격면에서 한국사의 시대적 구분을 가능케 하는 민주·민중세력의 역동적 진출이었다. 이러한 민중 에너지의 혁명적 분출은 19세기 후반기 세계 자본주의에의 편입 속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굴절된 민족사를 바로잡으려는 투쟁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외세에 예속된 강권통치에 대한 투쟁은 민주·민족운동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비평」은 민족사의 전환기에서 지금까지 묻혀왔고 왜곡돼 왔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대중적인 수준에서 폭넓게 탐구하고자 한다. 「역사비평」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허심탄회한 논쟁을 통해 진실에 접근케하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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