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기원에서 유창혁 9단과 양재호 9단의 명인전 본선 대국이 있었다. 요즘은 국내 기전 도전기가 열려도 별로 거들떠 보지 않는 실정이므로 본선 대국 쯤이야 「당연히」 기사들의 관심 밖이었다.기사실에 나와 있던 프로들도 대부분 NHK 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일본 기세이전 조치훈과 왕리청의 도전 5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오 7시께 대국이 종료됐다. 이미 퇴근 시간이 휠씬 지나 기사실은 물론 기원 전체가 거의 비었을 시간이었다. 두 대국자가 바둑돌을 거두고 막 복기를 시작할 무렵 루이나이웨이가 부리나케 대국장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 와서는 5분여 동안 이것 저것 열심히 질문하더니 다시 바쁘게 나가 버렸다.
알고 보니 당시 루이는 한국기원 직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던 참에 마침 대국이 끝나자 복기 장면을 보기 위해 서둘러 대국장까지 뛰어 올라온 것이었다. 루이가 한국기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기사라더니 정말 저녁 늦게까지 혼자 남아 「하찮은」 본선 대국까지 일일이 지켜보는 성실함이 놀랍고 다음날 물어 보아도 될 것을 굳이 대국장까지 쫓아와 의문점을 해결하는 부지런함이 진정 아름다웠다.
지난 한 주 동안 바둑계 톱뉴스는 단연 루이나이웨이였다. 중국 출신 여자 기사가 이창호 조훈현을 누르고 국수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소식은 국내외 매스컴에 대서특필됐으며, 여자의 몸으로 장한 일을 했다 해서 이희호 대통령 부인이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다. 바둑가에서도 두어 명만 모이면 『루이의 우승이 우연인가, 필연인가』에서부터 『루이 부부는 왜 아직도 아이가 없는가』에 이르기까지 온통 루이 이야기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바둑가에 나돌았던 이야기 가운데 이색적인 것은 루이가 요즘 예뻐졌다는 것. 사실 통념적인 기준으로 볼 때 루이가 미인형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반상의 마녀」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약간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작년부터 한국에 정착하면서 두터운 검은테 안경을 벗어 던지고 머리 모양을 산뜻한 숏커트로 바꾸었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덤덤했다. 한데 한달 두달 지나면서 루이가 의외로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여인이라는 인식이 국내 바둑인들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루이가 예쁘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 몰래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니니 하루 아침에 외모가 달라졌을 리는 없고 루이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보는 이의 눈길을 부드럽게 바꾼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루이의 이번 정상 정복에 대해 바둑계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이다. 외국인, 그것도 여자가 뭇 남성 기사들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는 데 대해 일반 바둑팬들로부터는 간간히 질책과 우려의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프로기사들의 반응은 오히려 담담하다. 일단 프로에 입문해서 승부사의 길을 택한 이상 남자건 여자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정상을 정복한 자는 모두 위대하고 존경스럽다는 프로 세계의 공통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루이가 아름답다는 주장도 그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박영철 바둑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