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제출된 민법개정안이 1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않아 법원에 계류된 수천건의 관련소송 진행이 정지돼 권리행사를 못하는 국민들이 급증하고 있다.특히 이들 법안들은 실생활과 직결된 것이어서 관련 당사자들이 많고 개정의 당위성이 높은 것들이어서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한정승인(限定承認)」제도. 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물려받는 상속재산의 범위안에서만 부모 등 피상속인의 채무를 부담하는 민법조항으로, 상속인은 상속개시일로부터 3개월내에 승인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없이 상(喪)을 치르고 뒷정리를 하다보면 3개월안에 물려받을 채권, 채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1998년 8월 이 조항에 대해 3개월의 기간은 상속인에게 촉박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법무부는 헌재의 취지에 따라 같은해 11월 채무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로 한정승인기간을 늘리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법원도 빚을 받으려는 채권자가 상속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판단을 보류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보류사례는 현재 서울지법 민사부의 경우 재판부별로 7-10여건씩에 달하며 한달에 1-3건씩 늘어나 전국적으로 1,000여건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법원관계자는 채권자는 물론 상속인들도 상속권을 행사하지 못해 불만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재 결정이후 적용법조가 효력정지됐기 때문에 국회가 입법을 해줘야 판결할 수 있다』며 『조항에 없는 것을 만들어 판결할 수는 없어 재판기일을 법개정이후로 지정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양자(養子)」제도 개정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행 양자제도하에선 양자가 양부모와 성(姓)·본(本)이 다르고 호적에도 양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양부모들이 고아의 입양을 기피하고 있다. 이에 법무부는 6세미만의 양자를 입양할 때 친생부모의 동의를 얻어 양부모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서울가정법원 등에 민원인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남편뿐만 아니라 부인도 자신의 친자식이 아님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친생부인제도 개정안, 동성동본금혼제도 대신 마련된 근친혼금지제도 등 여성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가족관련법 개정안들도 국회에 계속 계류되면서 민원이 폭주하고 있으나 속수무책인 상태다.
이같은 민원들이 쇄도하자 한 법관은 『국회의원들의 부작위로 재판이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법원 통신망에 올리기도 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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