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인 불법체류자 S(41)씨의 왼손 손가락은 엄지, 검지 두개뿐이다. 한국에 들어온지 2개월만인 지난해 12월 경기 남양주시 가구제조업체 A사에서 익숙지 않은 목재절단기에 왼손이 끼였기 때문이다. 어렵게 회사의 보상금 700만원을 받은 S씨는 손가락 3개를 한국에 묻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노동자의 권리,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그토록 싸웠던 우리들이 더 약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짓밟고 있다. 99년3월말 현재 중소기업청이 파악한 외국인노동자 수는 16만7,567명. 이중 10만8,855명이 체류기간을 넘긴 단기비자 입국자와 지정 사업체를 이탈한 연수생 등 불법체류자. 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도 가장 컴컴한 암흑지대에 놓여있다.
경기 남양주시 가구업체에서 2년간 일한 방글라데시인 보비(32)씨는 지난해 12월 『범법자 주제에 날뛴다』는 사장의 욕설에 이은 몽둥이 찜질로 왼쪽 귀 윗부분을 잃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계약을 맺어 송출받은 산업연수생, 해외 한국법인이 현지채용한 연수생 등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도 각각 3만1,397명과 1만5,908명에 이른다. 91년 연수생 제도가 시작된 뒤 갖가지 참상이 알려지면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단체의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60만원 수준의 저임금과 고용주 횡포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IMF관리체제 이후에는 일각에서 『지금이 동남아인들의 인권을 따질 때인가』는 여론이 일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시선이 다시 차가워졌다. 노동부가 산재보험, 체불보증보험 등 외국인노동자 보호책을 마련했지만 「돈」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 그림의 떡이다.
부산 북구 삼락동 C섬유에 근무하는 J(32)씨 등 인도네시아인 연수생 8명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하고 월급 45만원을 받는다. 이들은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탈출을 감시하는 한국인 직원의 「스토킹」도 감수하고 있다. 4개월전 회사식당이 폐쇄된 후 하루 식비로 1,000원을 받아 식사를 해결하는 실정. 이탈방지를 위한 강제적금 15만원과 사후관리업체(외국인연수생을 관리하는 회사) 관리비 1만여원을 떼어내면 빈털터리나 다름없다.
더욱이 대부분이 빚을 내 평균 2,000달러의 수수료를 현지 브로커에게 내고 한국에 온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불법체류를 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불법체류의 길에 들어선 외국인들은 고용주로부터 「범죄자」로 취급돼 폭행, 임금체불, 강제노동 등 가혹한 대우를 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이정호(李貞浩) 회장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임금과 노동 3권의 보장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국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라며 『내부에서 원시적인 인권침해를 자행하면서 어느 나라의 누구를 향해 한국인의 인권보장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사람을 사람답게]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들입니다』
전국 22개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들의 연합인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회장 이정호·李貞浩 신부). 대규모 공단지역은 물론, 군소 가구공장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이들이 있다.
소속단체들은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가 시작된 1991년부터 산발적인 상담지원 활동을 벌이다 95년 1월 네팔노동자들의 경실련 농성을 계기로 같은 해 7월 상설협의체인 외노협을 발족했다. 이후 외노협은 96년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국회청원과 5만명 서명운동 등 제도 개선에 주력하는 한편, 외국인노동자들의 공동체를 지원하고 노동법교육사업 등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만의 의료공제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이윤주(30) 사무국장은 『약자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아는 우리가 더욱 약한 자들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락처 (02)2637-9061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